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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각 / 이시영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우리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문화
임가람
2021.07.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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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가 남겨졌다 / 나희덕그는 가고그가 남기고 간 또하나의 육체,삶은 어차피 낡은 가죽 냄새 같은 게 나지 않던가씹을 수도 없이 질긴 것,그러다가도 홀연 구두 한 켤레로 남는 것그가 구두를 끌고 다닌 게 아니라구두가 여기까지 그를 이끌어온 게 아니었을까구두가 멈춘 그 자리에서그의 생도 문득 걸음을 멈추었으니얼마나 많이 걸었던지납작해진 뒷굽, 어느 한쪽은 유독 닳아그의 몸 마지막엔 심하게 기우뚱거렸을 것이다밑 모을 우물 속에 던져진 돌이바닥에 가 닿은 소리생이 끝나는 순간에야 듣고 소스라쳤을지도 모른다노고는 길고 회오의 순간은 짧다
문화
임가람
2021.07.1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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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에게 세를 주다 / 손택수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단칸집이다시름시름 기울어가던 처마 끝이다진흙둥지 되바르며보수공사에 여념이 없는 제비 한쌍신접살림을 차렸다부스스 일어나 올려다보면밤낮으로 깨소금을 떨어뜨린다이 허름한 적산가옥에 세를 들어 온 두 내외덕분에 가난한 나도이제는 어엿한 집주인이 된 셈인가관리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방을 빼지나 않을까 전전긍긍방세 대신 꼬박꼬박 챙겨주는새울음소리를 염치없이 받아쓰고 있는 나도이제는 집주인으로서의 그 알량하고 딱한체면이라는 걸 알게 된 셈인가달빛이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와서 하룻밤 묵었다
문화
임가람
2021.07.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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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위에서 떨다 / 이영광고운사 가는 길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수정할 수 없는직선이다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이 먼 곳까지꼿꼿이 물러나와물 불어 계곡 험한 날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엎드려 받아주고 있다문득, 발 밑의 격량을 보면두려움 없는 삶도스스로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문화
임가람
2021.07.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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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 최승호밤의 식료품 가게케케묵은 먼지 속에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한 쾌의 혀가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말라붙고 짜부라진 눈,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막대기 같은 생각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문화
임가람
2021.07.1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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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 이육사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문화
임가람
2021.07.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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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이진명 그녀는 엷은 돌빛의 옷을 입고 왔다 기다란 치마 흐르며 왔다 멀리 고향의 산간 지방에서 왔다 산나리처럼 고개 꺾으며 오래 걸어서 왔다 제비똥 떨어진 그루터기에서 신발을 고쳐 신으며 왔다 일요일, 점심 때도 훨씬 지나 도착한 그녀는 내 집 마당 대추나무 아래 조그맣게 서 있었다눈 밑 그늘진 곳이 더 파랬다 오는 대로 나를 불러 깨우지 않고 참! 언제까지 서 있으려고 바로 깨우지 않고 참!
문화
임가람
2021.07.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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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것 / 안도현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문화
임가람
2021.07.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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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나라 / 마경덕우리는 그 나라의 주민그곳에서 열 달을 지낸 흔적이 복부에 있고지갑을 열면 그 나라를 빠져나온 날짜가 꽂혀있다밤낮 숱하게 들락거린 그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마취처럼 깊은 잠을 깨는 순간, 잠의 탯줄이 끊어진다배꼽을 보며 내 어미임을 곧이듣듯잠을 숭배하는 우리는 어딘가 잠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모래시계를 뒤집듯, 생각을 뒤집어도검은 안대를 쓰고 수면잠옷과 양말을 신고 기다려도말똥거리는 잠, 같은 침대에 누워어깨를 맞댄 사람은 코를 골며 잠의 나라에 입국했다알람이 울리기 전 그 나라를 찾아야한다알람이 울리면 서둘
문화
임가람
2021.07.0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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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작은 집 / 김선태바닷가에 사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아시나요그들이 사는 아주아주 작은 집을 눈여겨 본 적 있나요.날마다 갯벌 위에 길을 내며 엎어져 있는 갯고둥의 집소라나 고둥의 빈집에 세 들어 사는 소라게의 집평생을 갯바위에 붙어사는 따개비, 석화, 홍합의 집뻘밭에 구멍을 내고 사는 짱뚱어, 갯지렁이의 집……비록 하찮고 보잘 것 없지만무심코 발로 밟기만 해도 깨지고 망가져버리겠지만그들의 집이 있어 변방의 바닷가는 쓸쓸하지 않습니다그들의 집이 있어 변방의 바닷가는 살아있습니다그들에게도 일생이 있고 세계가 있습니다그들의 집에
문화
임가람
2021.07.0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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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기에 없었다 / 김영석가을걷이 끝난 텅 빈 들판에이따금 지푸라기가 바람에 날리고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외딴 빈 집이따금 낡은 문이 바람에 덜컹거린다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와바람에 낡은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는누가 보고 들었는가?시를 쓰고 내가?나는 거기에 없었다.
문화
임가람
2021.06.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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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 도종환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지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내가 별을 떠날 때가 되어도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나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문화
임가람
2021.06.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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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 문인수어느 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째 굿모닝, 그런다. 한술 더 떠 아내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도 예외없이 굿모닝, 그런다.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 보고 싶었다 축하한다 해야 할 때도 고저장단을 맞춰 굿모닝, 그런다. 꽃바구니라도 안겨주는 것처럼 굿모닝, 그런다. 그런데 이거 너무 가벼운가, 아내가 눈 흘기거나
문화
임가람
2021.06.2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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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고은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문화
임가람
2021.06.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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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개 / 문태준까마귀가 먹감나무에 와서 짖어댑니다개는 까마귀더러 짖어댑니다우리 집에 소리의 오두막이 생겼습니다두 오루막이 처마를 맞대 온통 소란스럽습니다바깥 갔다 온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이놈의 까마구가 어데 앉아 짖어싸!"호통을 치며 돌멩이를 집어던지자까마귀의 오두막이 헐렸습니다공중으로 저 멀리 공중으로까마귀의 오두막이 이사를 갔습니다개의 올올하던 오두막도 이내 헐렸습니다돌돌 말린 노란 감꽃이 사르르 풀려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문화
임가람
2021.06.2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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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RNX뉴스] 박주성 기자 = KBS 2TV 월화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 현실감 넘치는 전개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줬다.지난 14일(월)과 15일(화) 밤 9시 30분 1, 2회가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연출 김정현/ 극본 고연수)이 초반부터 시선을 장악하는 스토리와 박지훈(여준 역), 강민아(김소빈 역), 배인혁(남수현 역) 등 청춘 배우들의 호연으로 화제를 모았다.특히 꿈과 낭만이 사라진 캠퍼스의 황량한 풍경을 그려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학
연예/방송
박주성 기자
2021.06.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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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정한 삶 / 박흥식 소는망치 하나에 쓰러져모든 진정한 삶에 활기로 넘친다날카로운 속눈썹만이 남고 시인은종잇장에 그 선연한 핏물로 배어고독했던 자신의 퇴색한 초상과 만난다.
문화
임가람
2021.06.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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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 김명인 걸음을 못 걸으시는 어머닐 업으려다허리 꺾일 뻔한 적이 있다고향집으로 모셔 가다 화장실이 급해서였다몇 달 만에 요양병원으로 면회 가서구름처럼 가벼워진 어머닐 안아서 차로 옮기다가문득 궁금해졌다, 그 살 죄다 어디로 갔을까?삐거덕거리던 관절마다 새털 돋아난 듯두 팔로도 가뿐해진 어머니를 모시고산중턱 구름 식당에서 바람을 쐰다멀리 요양병원 건물이 내려다보였다제 살의 고향도 허공이라며어제 못 보던 구름 내게 누구냐고 자꾸 묻는다난 아직 날개 못 단 새끼라고말씀드리면 머지않아 내 살도 새털처럼 가벼워져푸른 하늘에 섞이는 걸까
문화
임가람
2021.06.0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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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느티나무가 / 신경림 고향집앞 느티나무가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그때가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니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나는 서러워 하지 않았다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문화
임가람
2021.06.0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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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약전(略傳) / 서정춘내 안에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 밖으로 빚어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 업고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젖은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가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생이 있었다.
문화
임가람
2021.05.14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