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만취·흉기 없는 폭행…'사람이 죽었을 때' 검색 결과로 살인혐의 적용 의문"

(거제=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지난달 4일 오전 2시 36분께 경남 거제시 한 크루즈 선착장 인근 길가.

20대 A씨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주변을 지나던 중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모습에 깜짝 놀랐다.

체구가 커다란 남성이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을 길가에서 끌고 다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강력범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A씨는 친구들과 의논해 이 남성을 제지하기로 결정했다.

차에서 내려 친구들과 가까이 다가가니 여성은 의식을 잃은 채 하의가 무릎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무슨 짓이냐고 따지자 이 남성은 '내가 경찰이니 상관 마라'는 식으로 쏘아대며 그 자리에서 도망가려 했다.

범인임을 직감한 이들은 주먹으로 얼굴 등을 몇 차례 때리는 등 물리력을 동원해 이 남성을 현장에서 제압했다.

거구의 남성이 강력범죄를 저지른 뒤 도주하려 하자 이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이후 이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이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조사 결과 피의자 B(20·남)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크루즈 선착장 인근 길가를 배회하던 피해자 C(58·여)씨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수십차례 때린 것으로 확인됐다.

얼굴과 복부 등을 주먹과 발로 20여분가량 폭행한 뒤 C씨가 의식을 잃자 도로 주변으로 끌고 다니다 A씨 일행에게 제압당해 체포된 것이다.

의식을 잃기 전 C씨는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B씨에게 애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숨졌다.

B씨는 "술에 취해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으며 그곳을 왜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얄궂게도 A씨를 포함한 목격자 일행은 B씨 제압 과정에서 주먹을 휘둘러 만약 B씨가 이들을 고소한다면 폭행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B씨는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얼굴에 타박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회로(CC)TV로 이를 확인한 경찰이 B씨에게 고소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으나 B씨는 '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상관하지 않겠다'고 처벌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살인 사건 피의자를 현장에서 잡고도 오히려 폭행으로 처벌받을 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직인 B씨는 입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며 거제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가족들과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남편과 자녀 없이 홀로 지내며 가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B씨를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범행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 혐의를 살인으로 바꿔 구속기소했다.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와 고의성이 있었는지에 따라 상해치사와 살인 혐의가 갈린다.

의도와 고의성이 있었다면 살인, 그게 아니라면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되는 게 일반적이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살인 혐의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상해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다.

검찰은 디지털포렌식 기법으로 B씨 휴대전화를 복원해 범행 전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등을 검색한 사실을 알아내 범행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부분을 놓쳐 부실하게 수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당시 B씨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 상태에서 흉기 없이 범행을 저질러 최초에 상해 혐의로 검거됐으며 이후 C씨가 치료 중 사망해 상해치사로 혐의가 달라진 것이라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CCTV에 사건 전 과정이 찍혀 당시 휴대전화를 압수해 복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인터넷 검색 결과만 가지고 고의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살인 혐의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해 다시 돌아가도 이를 적용할 지 의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검찰 측에서 당시 피의자가 피해자가 죽었는지 아닌지 다시 확인했다는 둥 확실하지 않은 추측성 내용을 사실처럼 말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피의자를 살인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조금 무리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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