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조윤진 인턴기자 = 지난 5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몸을 던졌습니다. 33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던 필립 클레이(Phillip Clay, 한국명 김상필·43)씨입니다. 그는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가 돼 2011년 7월 한국으로 추방됐습니다. 고국이지만 낯선 환경에서 방황하기를 6년,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필립처럼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지 못한 한국인 입양아는 올해 8월 기준 1만8천명에 달합니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지속해서 이주자를 추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제2, 제3의 필립이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처럼 추방되는 입양인이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주로 시민권 없는 비자(IR-4)로 이뤄졌던 해외입양 방식과 부족한 사후조치가 지목되는데요. 추방 입양인의 규모와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 한국은 세계 최대 아동 송출국…전 세계 해외입양 아동의 40%가 한국인

"국제입양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서양 양부모에 의한 아시아 아동의 대규모 입양은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먼, '21세기의 아시아의 국제입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일의 아동 송출국인 한국은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나라입니다. 실제로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전체 해외입양 아동(50만 명)의 3분의 1이 넘는 2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요. 정부 공식통계로도 작년까지 16만6천명에 달합니다. 전 세계 해외입양 아동의 40%가 한국인인 셈이죠.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한국전쟁 직후 고아 구제를 위한 임시 조치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1970~80년대에는 사회경제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해외입양도 함께 급증했습니다. 전쟁 직후 고아와 가난이 해외입양의 주요인이었다면 산업화 이후에는 미혼모 자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습니다.

◇ 입양 완료 전에 출국부터…국적 잃은 입양인 2만6천명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58년~2015년 해외입양 아동 중 미국 입양아의 비율은 약 67.3%(11만2천17명)로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미국 입양의 경우 아동은 IR-3 또는 IR-4 비자로 출국합니다. IR-3 비자의 경우 양부모가 입양아의 출생국가로 와서 입양 절차를 완료하는 경우 주어지며 미국 시민권도 자동 발급됩니다. 반면 IR-4 비자는 양부모가 아이를 만나지 않고 입양기관이 대신 절차를 밟으며 현지에서 절차를 완료해야만 시민권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미국 입양 아동은 2013년까지 모두 IR-4 비자로 출국했고, 입양특례법 개정 후부터 IR-3로 출국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은 'IR-4' 비자를 가장 많이 발급받은 국가입니다.

문제는 IR-4로 나간 후 입양이 완료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는 겁니다. 지원금을 목적으로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가 아이를 방치하며 입양 절차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 사례도 발생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해외 입양인들이 무국적 상태가 된 것은 과거 우리나라가 해외입양을 보낼 때 아동의 우리 국적 박탈만 신경 썼을 뿐 입양 국가의 국적 취득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구멍 난 입양특례법,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필요해

이런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2011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됐습니다. 이후부터 입양을 받기 위해서는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한 뒤 양부모가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결과 2004년 1천710건에 달하던 IR-4 비자는 입양특례법 시행 후 2014년부터 0건으로 급감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미 IR-4 비자로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 입양특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현지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추방 위기에 놓인 입양인이 1만8천명에 달하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전무합니다.

최근 신흥 '아동 송출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경우 2005년 헤이그 협약을 토대로 일찍이 입양아의 신분과 인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헤이그 협약은 국가들이 입양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3년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에서 채택한 것인데요.

우리나라는 2013년 5월 헤이그 협약에 서명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현재까지 국회 비준을 받지 못했습니다. 협약 이행 법률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죠.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기동민 의원은 "입양된 아이들이 국적도 없이 추방되고 있음에도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복지부를 비롯한 외교부, 법무부 등 정부 당국이 실효적이고 신속한 조치를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해외입양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전쟁 직후 시작된 해외입양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지난 7월에는 국내외 입양단체에서 활동 중인 해외 입양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화된 대한민국의 해외입양제도를 폐기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인포그래픽=정예은 인턴기자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