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 저금리 대출 미끼 악성 앱 설치 유도
200명 상대 20억원 꿀꺽…조직원 15명 구속·총책 등 2명 수배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오수희 기자 = 지난해 12월 18일 부산에 사는 김모 씨는 솔깃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캐피탈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기존 2·3 금융권 대출을 이자가 싼 정부 지원 대출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김씨는 캐피탈 직원 말투가 어색하지 않아 보이스피싱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싼 이자 대출로 전환하려면 기존 대출금 일부를 갚아야 한다", "보증보험 증권 발행과 신용정보 조회에 든 비용을 송금해줘야 한다"는 말에 속아 김씨는 2차례에 걸쳐 1천205만원을 송금해버렸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김씨에게서 더 돈을 뜯어내려고 다시 전화를 걸었고, 김씨는 그제서야 보이스피싱에 속은 것을 알았다.

김씨는 경찰서로 달려가 보이스피싱 피해 사실을 말하고 조사를 받다가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날 오후 4시 46분께 경찰 112 신고시스템에 "부산도시철도 감전역에 15분 뒤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는데, 발신 번호가 김씨 휴대전화번호였기 때문이다.

김씨가 3번째 전화 사기에 속지 않고 말다툼을 한 것에 앙심을 품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김씨 휴대전화에 심어 놓은 악성 앱으로 112에 거짓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를 시작해 200여 명의 휴대전화에 '악성 앱'을 설치하는 수법으로 1년간 20억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부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사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A(36)씨 등 보이스피싱 조직원 15명을 구속하고 달아난 총책 B씨 등 2명을 인터폴에 수배했다고 2일 밝혔다.

A씨 등은 지난해 1월 중국에 콜센터 사무실과 숙소를 차려놓고 피해자 211명을 상대로 "저금리 대환·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20억4천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대상은 주로 2·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기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저금리 대환 대출을 해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연락 온 피해자들에게 모바일 대출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앱을 설치하도록 권유했다.

앱에 설치된 IP 주소를 누르는 순간 피해자 휴대전화에 악성 앱이 깔린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피해자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받은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 휴대전화번호로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있게 된다.

피해자가 금융기관으로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콜센터로 전환하는 기능도 있어 피해자들은 꼼짝없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 대환대출 조건으로 기존 대출금 상환 등을 요구해 가로챘다.

이들은 또 피해자들을 속이고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려고 070으로 시작하는 중국 콜센터 인터넷 전화번호를 010으로 시작하는 국내 휴대전화번호로 변조했다.

'모바일 게이트웨이'라는 중계기를 설치해 발신 전화번호를 속이는 전화번호 변작 조직과 연계해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은 달아난 총책 B씨 등 2명을 인터폴에 수배하는 한편 중국 공안과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저금리 대환대출을 해준다며 IP 주소를 불러주고 앱을 설치하도록 한 뒤 대출금 일부 변제나 보증보험료 명목으로 송금을 요구하는 경우 보이스피싱일 가능성이 높아 해당 금융기관을 직접 방문하거나 다른 사람 휴대전화로 중복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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