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7개월간 폭언·폭행 피해 870건…갈수록 증가 추세

(전국종합=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머리가 너무 아파요"

제주도 서귀포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A(28·여)씨는 이달 2일 두통을 호소하는 한 30대 여성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오전 7시를 갓 넘어 부랴부랴 출동한 A씨는 술에 취해 머리가 아프다는 B(31·여)씨를 구급차에 재빨리 태웠다.

그러나 B씨는 "나는 환자니까 똑바로 혈압을 재라"며 자신을 돕던 B씨에게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급기야 차에 있던 구급 장비를 집어 던져 부수기까지 했다.

취객을 도우려다가 왼쪽 손목에 찰과상까지 입은 A씨는 다른 동료들과 구급차를 세운 뒤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최근 전북에서 취객에게 맞은 여성 구급대원이 뇌출혈로 치료를 받던 중 한 달 만에 숨져 공분을 산 가운데 분초를 다투며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의 수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취객을 주로 상대하는 구급대원들은 좁은 구급차나 현장에서 위험천만한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기 일쑤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홍철호(경기 김포 을)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7월 말까지 5년 7개월 동안 소방관들이 폭행이나 폭언을 당한 사례는 870건에 달한다. 모두 구조나 구급 활동 도중 벌어진 것이다.

지난달 강원도 원주에서는 한 50대 취객이 "다리에 쥐가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을 흉기로 위협하다가 경찰에 넘겨졌다.

그는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위해 어디가 아픈지 묻자 "왜 자꾸 물어보느냐"며 욕설을 퍼붓고 흉기로 위협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급차 양쪽 후사경(사이드미러)과 와이퍼를 부수고 라이터로 종이를 태워 차에 불을 붙이려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인천에서는 술에 취한 현직 소방서장이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의 뺨을 때렸다가 직위 해제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인천 강화소방서장이던 C(56)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20대 소방사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했다가 감찰팀에 넘겨졌다.

그는 당시 동료들과 함께 회식 후 계단에서 미끄러져 이마를 다치자 119에 신고했다가 물의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폭언이나 폭행 피해를 본 사례는 2012년 이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93건에 불과하던 피해 사례는 2016년 200건으로 4년 새 2.2배나 늘었다. 지난해에도 7월 기준 98건의 피해 사례가 발생해 201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피해보다 오히려 많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5∼2017년 최근 3년간 발생한 구급대원 폭행 사건 564건 중 183명과 147명이 각각 벌금형과 징역형을 받았다. 수사·재판 중인 건도 134명에 달한다.

소방청은 전북 익산에서 취객에게 여성 구급대원이 맞아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구급대원 폭행을 중대범죄로 보고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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