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청 공무원노조, 옥상쉼터 이전 요구…"휴식공간 부족"

(서울=연합뉴스) = 서울 강동구청 성안별관 옥상에는 고양이 15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유기묘나 다친 길고양이,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길고양이를 거둬 돌보다가 입양 보내는 '고양이 어울쉼터'가 이곳에 있다.

국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동물복지 정책을 편다고 평가받는 강동구청과 길고양이 보호단체 '미우캣'이 뜻을 모아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그간 쉼터를 거쳐 입양 보낸 고양이만 274마리다.

이런 고양이 쉼터가 갑작스럽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옥상 쉼터를 5월 둘째 주까지 옮기지 않으면 강제력을 행사하겠다'며 반대에 나선 것은 다름 아닌 강동구청 공무원노동조합. 지역주민의 님비 현상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던 강동구청이 내부에서 강력한 님비에 부닥친 것이다.

특수학교에 이어 어린이집, 청년 임대주택 등 공공시설 기피 현상까지 극심해지는 가운데 동물보호시설 관련 논의도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 공무원 노조 "악취·털 날림 견디기 어렵다"…이전 요구

26일 강동구에 따르면 강동구청 노조는 13일 구청과 함께 고양이 쉼터를 운영하는 미우캣보호협회에 공문을 보내 공무원들이 흡연·휴식 등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쉼터 이전을 요구했다.

노조는 "강동구청 성안별관 옥상은 조합원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해소와 소통·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길고양이 쉼터 설치 이후 고양이 분비물로 인한 악취, 털 날림 등으로 휴식공간 사용이 불가능해졌다"며 "빠른 기일 내에 시설물 이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길고양이 보호정책을 추진해온 구청 동물복지팀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최재민 팀장은 "따로 건물을 얻어 동물보호 쉼터를 운영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아직 사회적 편견도 남아 있어서 공무원들이 모범을 보여 조금씩 양보하고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의 입장은 강경하다.

백남식 강동구청 공무원노조위원장은 "구민회관 옥상이나 일자산농업박물관 등 다른 건물로 이전해도 되는데 굳이 구청 내에 고양이 쉼터를 존치할 이유가 없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정리해야 한다"며 "청사 공간이 부족해 복도에 사무 집기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구청장 등이 나서 고양이 쉼터로 쓰이는 옥상 공간 일부를 분리해 공무원 휴식공간을 넓히겠다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논의는 2주일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 민원 때문에 들여온 고양이 '강동이'로 출발

강동구청 별관은 공무원 270여 명의 사무공간이다. 옥상은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휴식하는 공간으로 이용했으나, 몇 년 전부터 고양이들과 '공존'하고 있다.

공존의 계기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공무원이 당직을 서던 중 "동네에 새끼 고양이가 있으니 데려가라"는 민원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동물보호소에 보내면 안락사 될 것이 뻔했기에 그는 새끼 고양이를 구청 한쪽 구석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이후 버림받은 고양이 몇 마리를 더 들여 동료들과 구청 옥상에서 돌봤다. 새끼 고양이는 '강동이'라는 이름을, 공무원은 '강동이 아빠'라는 별명을 얻었다.

같은 해 이해식 구청장은 전국 최초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시작했다. '모든 생물은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길고양이 민원이 대폭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 배고픔을 해결한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우는 일이 줄어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기견과 함께 길고양이·유기묘의 안락사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연 것이 바로 구청 별관 옥상의 고양이 쉼터다.

쉼터는 미우캣 등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의 봉사로 운영된다. 사료는 기업에서 기부받는다. 아픈 고양이를 치료할 때만 마리당 15만원씩 구청 예산을 지원한다.

다른 고양이가 왔다가 입양 가는 동안에도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강동이가 쉼터의 마스코트다. 쉼터 고양이들은 사람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일이 없어 경계하지 않고 '망중한'을 즐긴다. 인근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초등학생들은 방과 후 쉼터를 찾는다.

◇ 강동구청 공무원들 "공존 방안 찾자"

강동구는 지난해 11월 유기견 전문 입양센터인 '리본'을 만들었지만, 아직 고양이 전용 보호공간은 없다.

최 팀장은 "지역주민들의 인식 개선은 의외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유기견 입양센터와 관련한 반대 민원이 지금까지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고양이 쉼터가 언제까지 옥상에 있을 수는 없으므로 예산을 확보해 동물보호 공간을 따로 조성하는 게 동물복지팀의 목표다. 유기견 입양센터 '리본'은 민간건물에 입주해 매월 임대료를 내야 하는 게 부담이다.

강동구의 한 공무원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직원들을 이해하며, 비난하고 싶지 않다"며 "그러나 쉼터를 당장 빼라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할지 함께 논의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고양이 쉼터에 대한 호불호는 내부에서도 갈리는 편이지만, 환경·동물보호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 흐름"이라며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자 미우캣보호협회 회장은 "강동구의 동물보호 정책은 다른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해갈 정도로 선도적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며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고려하면 언제까지 유기견·길고양이를 안락사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동구 내에는 길고양이 3천마리 정도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버려지거나 다쳐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는 1년에 300마리가량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