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창헌 일병 유해 66년만에 아내 품으로 돌아와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가 전사한 한 호국영웅의 유해가 66년 만에 아내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1951.8.9∼1951.9.18)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김창헌 일병의 부인 황용녀(94·경기 성남)씨의 자택을 방문해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한다고 24일 밝혔다.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 함께 발굴된 인식표, 도장 등 유품이 유족에게 전달된다.

김창헌 일병은 1924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삼죽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44년 4월 황용녀씨와 결혼했다. 그는 1951년 1월 28세의 나이로 국가의 자유 수호를 위해 자원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에 배치됐다.

1951년 7월 10일,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으나 공산군 측의 무성의로 회담이 지연되자 유엔군 사령부는 공산군 측을 회담장으로 불러내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제한된 공격작전을 계속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에 김 일병이 소속된 국군 8사단이 투입됐으며, 강원도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해 적을 압박하기 위한 전형적인 고지쟁탈전 양상의 전투가 지속됐다.

국군과 북한군의 고지쟁탈전은 피아간 방어에 유리한 명확한 지형지물이 없었으므로 공방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국군 8사단은 1차 노전평 전투에 이어 2차 전투에서 고지군 요충지를 점령해 서화축선 일대를 통제할 수 있었다. 국군 8사단은 일주일간 벌어진 2차 전투에서 포로 57명, 사살 983명의 전과를 올렸지만, 아군도 전사 90명, 부상 536명, 실종 17명 등의 큰 피해를 보았다.

김 일병은 1951년 8월 25일 2차 노전평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의해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지난 7월 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무명 900고지 일대에서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0184968)와 한자로 이름이 새겨진 도장,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그러나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는 끝자리가 불명확해 맨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웠고 함께 발굴된 도장도 60여 년이 지나 글자도 불명확해 병적자료 분석이 어려웠다.

이에 유해발굴단의 유가족찾기팀 탐문관은 병적자료와 보훈처, 현충원이 보유한 6·25 전사자 자료 분석에 돌입했다.

끝자리가 불명확한 이유로 군번 0184960부터 0184969를 가지고 있는 전사자와 '김창○(金昌○)' 두 글자의 한자로 시작되는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대조했고 그 결과 지난 7월 6일 최종적으로 군번 0184968, 일병 김창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해발굴단 유가족찾기팀은 등록된 김 일병의 유가족을 추적했고,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김 일병의 딸 김인석(66)씨가 2008년 6월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뒀다는 것을 파악한 탐문관은 지난 7월 7일 더 정확한 신원확인 검증을 위해 유전자 시료를 추가로 채취했다.

유전자 시료 비교·분석 결과 발굴된 부녀 관계로 확인된 감정 결과를 9월 25일 받게 됐다.

김 일병의 아내 황용녀 씨는 "남편이 6·25전쟁으로 자원입대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남편도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남편은 복중의 아이를 남자로 생각해 '김인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고, 10일 후 딸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황 씨는 "남편이 소중히 지어준 아이의 이름을 바꿀 수 없어 아들 이름이지만 그대로 쓰기로 했다"면서 "남편이 떠난 후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을 하며 홀로 딸을 키웠는데, 이제라도 남편의 유해를 찾아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러워요"라고 말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신원이 확인된 김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향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번 6·25 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5번째이며, 올해는 7번째 귀환행사이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대령)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 바쳐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계신 전사자분들이 아직도 12만3천여 위나 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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