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외모, 큰 키 등 '맞춤 아기' 우려에 윤리문제 불거질 듯
한국 IBS·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유전자가위' 기술로 '네이처' 논문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인간 배아에서 유전성 난치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유전자가위로 교정하는 실험이 성공했다. 이 기술이 앞으로 실용화돼 실제 임상에 적용된다면, 자녀가 유전성 질환을 앓지 않도록 인공수정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기술은 외모와 키 등 원하는 형질을 가진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문제 등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전망이다.

유전자가위는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마치 '가위'처럼 잘라 내고 붙이는 교정 기법을 뜻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팀이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OHSU)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팀 등과 함께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심근증의 원인인 유전자 돌연변이를 교정하는데 성공했다고 3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최신호(영국 런던 시간 2일 자)에 실렸다.

비후성 심근증은 좌심실벽이 두꺼워지는 유전성 심장질환으로, 500명 당 1명 정도가 앓는다. 부모 중 한 명이 환자라면 자녀에게 50%의 확률로 자녀에게 유전된다. 환자가 격한 운동을 하면 젊더라도 돌연사할 수 있어, 평생 무리한 운동을 자제해야 한다.

이 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돌연변이는 여러 가지가 알려졌으며, 그중 하나가 심장근육 단백질인 'MYBPC3'를 만드는 유전자에 염기 4개(GAGT)가 사라진 경우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3세대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CRISPR)-Cas9'를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이 돌연변이를 교정했다.

국내에서 인간 배아를 이용한 연구가 금지된 만큼 배아 실험은 현지 규정에 따라 미국 연구진이 진행했다. 한국 연구진은 유전자가위를 제작하고 교정의 정확도를 분석하는 작업을 맡았다.

연구진이 넣어 준 유전자가위는 수정란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인식해 해당 부분을 잘라냈으며, 그 뒤 수정란이 스스로 이 부분을 정상 유전자로 복구(repair)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쓸 때는 흔히 복구할 때 '모범 답안'으로 쓰도록 정상적 유전자 조각을 넣어주지만, 이 경우 난자의 정상 유전자를 따라 복구가 이뤄져 수정란에 외부 유전자를 따로 넣어줄 필요가 없었다.

연구진은 배아에서 일부 세포만 돌연변이가 교정되고 나머지 세포는 그대로인 '모자이크 현상'을 없애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썼다. 수정란에 유전자가위를 넣는 것이 아니라, 난자에 정자와 함께 유전자가위를 넣어 수정란을 만들었다. 또 유전자가위에서 절단 역할을 하는 Cas9 효소가 바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단백질 형태로 직접 넣어줬다.

이렇게 '유전자 편집'이 이뤄진 수정란이 분열해 생긴 배아 58개 중 42개(72.4%)가 제대로 교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16개(27.6%)는 유전자가위가 정자에서 유래한 변이 유전자를 잘라내는 바람에 추가 변이를 일으켰다.

이 중 제대로 교정된 배아는 착상 직전인 '배반포기'까지 정상적으로 발달한다는 사실을 연구진은 확인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유전자가위의 '표적' 돌연변이 외에 최대 23곳이 잘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표적 외에 절단된 곳은 없었다.

논문의 공동교신저자 5명 중 한 명인 김진수 단장은 "지금껏 연구자들은 표적 외에 다른 곳이 잘리는 이른바 '표적이탈 효과'를 우려해왔지만, 이번 연구 결과 수정란에서 유전자가위가 정확히 작동함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전자가위로 유전병을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혈우병, 겸상 적혈구 빈혈증, 헌팅턴병 같은 희귀질환을 앓는 수백만 명의 환자를 위해 이번 연구의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또 "세계적으로 인간배아를 이용한 기술의 임상 적용에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고려해 엄격한 제한이 가해지지만 연구는 허용되는 추세"라면서 현행 생명윤리법의 개정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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