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을 전격 해임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2016년 트럼프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한 코미가 잔여 임기를 6년이나 남긴 상황에서 해임된 이유가 석연찮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당신이 FBI를 효율적으로 이끌 수 없다는 법무부 판단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코미에게 보냈을 뿐 구체적인 해임 사유는 알리지 않았다.

서한만 보면 트럼프는 FBI의 상급 기관인 법무부에서 올린 업무능력 성적표를 토대로 코미를 내쫓은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행적에 비춰보면 이런 추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FBI가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이메일 수사를 재개하자 트럼프는 코미를 칭찬했고, 취임 후에도 등을 쓰다듬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코미를 살갑게 대하던 태도는 올해 3월 돌변한다.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을 해킹한 러시아 정보당국에 트럼프 측근이 연루된 의혹을 FBI가 수사한다고 하자 트럼프는 격분했다.

FBI가 백악관 기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를 확대하자 트럼프는 국장 경질 방안을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대선 비리 의혹을 덮으려고 코미를 서둘러 내쳤다는 일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코미 국장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쫓겨나자 수사국 직원들과 주 정부 법무장관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갈등이 조기에 봉합되지 않으면 FBI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FBI는 대통령이나 의회 지도자, 종교 지도자 등과 충돌했을 때 비밀정보를 악용해 상대를 굴복시킨 전례가 많다.

1908년 법무부 검찰국으로 시작, 1935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FBI는 미국은 물론, 주요 국가에 직원 약 3만6천 명을 둔 세계 최고 수사·정보기관이다.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범죄 전쟁'을 벌이던 1930년대다.

살인·강도·유괴 등으로 악명을 날리던 범죄 단체를 미국 전역에서 일망타진한 덕에 온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폭력조직을 이끌고 경찰서와 은행 등 28곳을 턴 허버트 딜린저를 사살하고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백인 테러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을 제압한 것도 이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에서 암약하던 나치 독일과 소련 스파이를 색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수사 성과를 높인 데는 1920년대에 도입한 도청기의 위력이 컸다.

주류 밀매자 체포에 처음 쓴 도청은 점차 일반 범죄는 물론, 스파이 색출에도 활용한 최첨단 수사 기법이었다.

FBI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국외 첩보까지 관장할 정도로 권한이 커진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스파이 색출을 명분으로 무차별 도청과 감시를 해 고급 정보를 대거 축적한다.

FBI는 창설 이후 꾸준히 위상을 높여나갔으나 1947년 처음 시련을 맞는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과도하게 비대해진 FBI를 견제하려고 중앙정보국(CIA)을 만들어 국외 첩보 기능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FBI는 정보수집 범위가 국내로 제한돼 한동안 위축되는 듯했으나 1950년대에 부활한다.

매카시 상원 의원이 주도한 반공 열풍 덕분이다.

FBI가 워낙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탓에 많은 과오도 남겼다.

진보성향의 할리우드 스타, 언론인, 과학자 등의 약점을 들춰 협박하기도 했다.

헬렌 켈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존 스타인벡, 찰리 채플린, 메릴린 먼로 등도 사찰을 받았다.

엑스 파일에 오른 인물은 미국인만 43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후보들은 예외 없이 사찰했고, 현직 대통령의 혼외정사나 가족의 약점까지 낱낱이 수집했다.

사진이나 녹음테이프 등에 해당 자료를 담았다가 필요할 때 써먹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FBI가 집중하여 괴롭힌 인물이다.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으나 FBI에는 요주의 대상이었다.

흑인 투표권을 주장하고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펴는 데 옛 소련이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FBI는 1959년부터 5년간 끈질기게 킹을 도청했으나 공산주의 활동을 입증할만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다만, 생각하지도 않은 성매매 현장을 포착하게 된다.

킹 목사가 전국을 돌며 인권연설을 할 때 투숙한 호텔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난잡한 파티를 즐기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FBI는 녹음테이프를 킹 목사의 아내에게 소포로 보내 인권운동을 멈추지 않으면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킹은 충격을 받아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FBI의 탈선과 권력 남용은 에드거 후버 국장 시절에 가장 심했다.

후버는 수사력을 인정받아 29세에 일약 수장으로 발탁돼 1972년까지 무려 48년간 일해 G맨(FBI 요원)의 전설로 불린다.

두 차례 세계대전, 냉전 시대,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며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데 큰 역할을 한다.

미국을 지키는 최후 보루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으나 사후에는 정반대 평가가 쏟아졌다.

불법 도청과 협박, 부패로 점철된 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캘빈 쿨리지부터 리처드 닉슨까지 대통령 8명이 후버를 거쳐 갔으나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해임하지 못했다.

FBI가 대통령은 물론, 가족까지 뒤를 캐 축적한 엑스 파일이 불거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후버를 몇 차례 해임하려다 여성 스캔들로 되치기를 당해 두 손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후버와 각을 세웠다가 포기한다.

케네디의 마피아 거래와 혼외정사 정보를 후버가 꺼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8년 동안이나 FBI 요원을 활동했던 에드거 후버

케네디 후임인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후버 위력을 인정한 듯 그를 FBI 종신 국장으로 임명하는 파격 조치를 취한다.

FBI가 두렵기는 의회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예산을 깎지 않은 것이 방증이다.

막강 권력에 염증을 느낀 의회는 1968년 개선책을 마련한다.

FBI 국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되 임기는 10년 이내로 제한한 것이다.

이후 FBI는 미국 안보와 치안을 책임지는 고유 기능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수장 임기를 보장해준 게 주효했다.

괴물을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써 파수견으로 바꾼 사례다.

코미 국장 해임은 FBI를 애완견으로 삼아 부정 선거 의혹을 덮으려는 꼼수로 보인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점에서 호미로 막을 일을 삽으로 막아야 하는 악수를 둔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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