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33주년 및 서거 7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사를 하고 있다.(사진=보훈처)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33주년 및 서거 7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사를 하고 있다.(사진=보훈처)

[서울=RNX뉴스] 박지훈 기자 =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언론 활동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송진우 선생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식이 8일 열렸다.

국가보훈처는 8일 오후 2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고하 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33주년 및 서거 78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박민식 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국민의례와 약전봉독, 추모사, 추모강연, 헌화·분향, 추모의 노래, 유족대표 인사 말씀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89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송진우 선생은 1915년 김성수를 도와 당시 경영난에 빠져 있던 중앙학교를 인수해 학감이 된 뒤 곧이어 제10대 교장으로 취임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에 주력했다.

1919년에는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며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연합을 주선하는 일을 담당했다.

특히 3·1운동 기획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여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또한 1921년 9월 14일 ‘주식회사 동아일보’가 창립되자 제3대 사장에 취임해 언론인으로서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적극 추진했다.

1925년 미국 하와이에서 태평양 연안 기독교청년회 주최로 제1차 범태평양회의가 개최되자 서재필과 함께 국내 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다.

1926년 국제농민회 본부에서 조선 농민에게 전하는 3·1운동 7주년 기념사를 3월 5일 자 동아일보에 게재했다가 무기 정간 처분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27년 10월 제6대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한 선생은 1928년 문맹퇴치운동 추진, 1929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제3차 범태평양회의 참석, 1931년 학생들의 방학을 이용한 브나로드 운동 추진 등 활발한 언론 활동을 통한 항일운동에 힘썼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인 일장기를 지운 우승 사진을 게재해 제4차 무기 정간을 당했고 총독부의 압력으로 같은 해 11월 사임했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조직해 수석총무로 활동하다가 한현우에게 암살당했고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정부는 송진우 선생님을 비롯한 독립유공자분들의 헌신적인 생애와 정신을 우리 미래세대들이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보훈처]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