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엄 터너 / 비,증기 그리고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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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유산 / 송경동

내가 죽어서라도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며

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노동자들이 목숨을 놓을 때마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보수언론들이 이야기한다

천상 호수 티티카카호까지 가는 뻬루의 고산 열차는

1870년에 착공해 완공까지 삼십팔년이 걸렸다

공사 기간 중 이천명 넘는 인부들이 죽었다

중간 역도 없이 만년설 속을 열세시간 달리는데

딱 한번 이십분간 정차한다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이천명의 상여를 타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사회가 우리의 삶을 이용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특별히 애도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내릴 수 있는

생의 정거장은 의외로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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