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르 / 외톨이 나무
카스파르 / 외톨이 나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 안도현  

 

일생 동안 나무가 나무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어둠을 반반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섞어서 

자기가 살아온 꼭 그만큼만 그늘을 만드는 저 나무가 나무인 것은 

그늘이라는 것을 그저 아래로 드리우기만 할 뿐 

그 그늘 속에 누군가 사랑하며 떨며 울며 해찰하며 놀다 가도록 내버려 둘 뿐 

스스로 그늘 속에서 키스를 하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눈물을 닦거나 성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말과 침묵 사이, 혹은 

소란과 고요사이 

나무는 저렇게 

그냥 서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듯 보이는 

저 갈매나무가 엄동설한에도 저렇게 엄하기만 하고 가진 것 없는 아버지처럼 서 있는 이유도 

그늘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빈한한 집안의 지붕 끝처럼 서 있는 저 나무를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때로는 그늘의 평수가 좁아서 

때로는 그늘의 두께가 얇아서 

때로는 그늘의 무게가 턱없이 가벼워서 

저물녘이면 어깨부터 캄캄하게 어두워지던 아버지를 

나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눈 내려 세상이 적막해진다 해서 나무가 그늘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쓰러지지 않는, 어떻게든 기립 자세로 눈을 맞으려는 

저 나무가 

어느 아침에는 제일 먼저 몸 흔들어 훌훌 눈을 털고 

땅 위에 태연히 일획을 긋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있을 터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