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곽태영 기자 = 세월 따라 섬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육지가 돼버린 섬 야미도.  길 따라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집 앞 바다에서 바지락 캐던 시절은 옛말이 되었다.

배를 타고 앞 바다를 벗어나 위치한 무인도 ‘소야미도’는 외지인의 손이 타지 않아 세미, 돌장게, 지충이, 말미잘 등 과거 밥상을 책임졌던 산물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6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가 된 박연자씨는 주말에 자식들이 온다며 허리 한번 펴지 않고 지천에 깔려있는 찬거리들을 챙기기 바쁘다.

섬마을 아들들의 밥도둑이라 불리는 돌장 게장과 야미도의 대표 보양식 말미잘 들깨 탕까지! 야미도의 반찬 창고에서 오늘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 정성스런 한 끼를 차려낸다. 

실치 잡이가 한창인 장자도. 널린 실치들로 마을은 은빛 물결을 이룬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실치를 삶고 말리는 등 바다 일을 척척해내는 김여임 어르신.

그런 어머니를 살뜰히 생각하는 맏아들 대영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겠다며 독신을 선언,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였다는데… 막내 동생까지 결혼을 시킨 후인 48세에 비로소 늦장가를 가게 된 대영 씨. 맏아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가장 속을 썩였지만 가장 고맙기도 한 맏아들에게 어머니는 오늘도 손수 아귀를 손질해서 아귀 탕을 끓여낸다. 거친 바다 일에 지친 아들의 언 몸은 어머니의 정성어린 아귀 탕 한 그릇에 스르르 녹아내린다.

자식들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놀리는 어머니를 위해 며느리는 실치를 활용한 음식으로 감사를 표한다. 실치는 치아가 부실한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이맘때가 아니면 먹기 힘든 귀한 실치 회 무침부터 실치 볶음에 실치 전까지! 아들이 잡아온 실치와 아귀로 한상 가득 차려낸 장자도 앞바다 밥상을 만나보자!

바다마을 남자들이 배 타러 저 멀리 바다로 나간 사이 서로를 의지하며 아들의,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동지애가 싹튼 고부지간. 이제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섬 생활도, 시어머니도 어렵고 무섭기만 했던 며느리는 이제 또 다른 어머니가 되어 이 섬을 지키고 있다. 무녀도에서 수십 년을 함께한 최연순, 김혜순 고부는 오늘도 각자의 동이(바구니)를 들고 갯벌로 나간다.

바지락 캐기가 한창인 요즘! 바지락을 캐기는 커녕 까지도 못했던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할당된 몫까지 거뜬히 책임지는 베테랑이 되었고 바지락 탕과 바지락 무침 거기에 바지락 전까지 바지락으로 못 하는 음식이 없는 바지락 박사가 되었다. 도시 처녀에서 섬마을 어머니가 된 며느리의 장자도 바지락 밥상을 만나본다.

섬마을 어머니의 숙명은 외로움일지 모른다. 장성한 자식들은 어미의 품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고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기도 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는 함께 고락을 함께 해온 이웃.

이제 이웃은 가족과 다름없다. 2살 터울의 윤보배, 윤순억 어르신은 16년 전 윤보배 할머니가 딸을 따라 섬으로 들어오면서 그 인연이 시작되었다. 군산에서 무녀도로 시집온 딸은 10여 년 전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리고 말았다.

혼자 남은 서러움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지천에 널린 굴을 까며 묵묵히 견뎌온 세월. 이웃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다. 굴 칼국수와 굴 무침으로 차려낸 투박한 밥상은 이웃과 함께하기에 특별한 한 끼, 아픔을 치료하는 명약이 된다.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는 섬마을 어머니들의 특별한 우정을 만나본다.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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