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곽태영 기자 = '다큐 3일' 보성 영천리 차밭 72시간이 오는 8일 오후 10시 40분 KBS 2TV를 통해 방송된다.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는 온 마을과 산이 차밭으로 가득한 ‘녹차 마을’이다.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의하면 예부터 이 지역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큰 일교차와 안개, 물 빠짐이 좋은 토양 등 차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처음 차밭이 조성된 것은 1940년대, 일본인이 기업식 다원을 경영하면서부터다. 광복 이후 10여 년 간 버려져 있었으나, 1960년대부터 다시 차밭 단지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보성은 한국 차의 명산지로 이름을 떨쳤고, ‘웰빙 열풍’과 함께 녹차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커피 산업이 확대되고 음료 시장이 다양화되면서 최근에는 녹차를 찾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 그러나 보성군 영천리 사람들은 ‘좋은 차’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차밭을 지키고 있다.

녹차의 제 2의 전성기를 기다리며, 올해도 찻잎을 따는 사람들. 그들의 72시간을 담았다.

차나무가 첫 잎을 피워내는 4월 중순. 이 시기가 되면 영천리 농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해진다. 이즈음 수확한 차는 ‘곡우(穀雨)’ 전에 딴다고 하여 ‘우전차’라 불리는데, 향이 좋고 맛이 온화하여 최상품 차로 꼽힌다. 그 이후에는 수확하는 시기에 따라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분류하는데, 수확 시기가 늦어질수록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추운 겨울에 눈 속에서 건강하게 있다가빨리 올라온 차. 그 차가 우전차예요. -최명숙-

매일매일 찻잎 시세도 달라지기 때문에 차밭 농가는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잎을 따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일손이 부족해 이웃 마을에서 사람을 구해오기도 하고, 먼 곳에 사는 가족들까지 총동원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갈수록 인력난이 커지고 있다며, 일손이 없어 수확 시기를 놓칠 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날마다 가격이 내려가니 하나라도 더 따려고 정신이 없죠. 오늘 자면 찻잎 가격이 천 원 내려가고, 또 천 원 내려가고 -양화자-

일손이 딸려서 수확을 많이 할 수가 없어요.예전에는 일을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왔었는데이제 연세가 드셔서 작업을 못하시는 거죠. -이재성-

찻잎 따기도 큰일이지만, 수확한 찻잎이 발효되기 전에 그날그날 가공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먼저 이물질과 묵은 잎을 골라내고, 300~400도의 뜨거운 온도에서 골고루 덖어준다.

덖고 난 찻잎은 열기를 식힌 다음 비비기를 한다. 덖기와 비비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맛과 향이 짙어지는데, 작업을 거듭할수록 덖는 온도와 비비는 손의 힘을 잘 조절해야 한다. 최근에는 기계화가 된 부분들도 많지만 여전히 오랜 노하우와 정성,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고된 작업이다.

차를 비벼야 맛이 제대로 나오게 돼 있어요. 옛날에는 9번 비비고 9번 덖었다고 해요 -정숙희-

차수확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영천리는 친환경 녹차마을로 운영되고 있어 제초제 없이 일일이 손으로 풀을 맨다. 이장 이재성 씨는 영천리 농민들이 좋은 차를 수확하기 위해 1년 내내 구슬땀을 흘린다며, 이렇듯 정성 들여 만드는 보성 차의 가치를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찻잎 수확으로 바쁜 시기가 되면, 영천리는 고향집을 찾아온 자녀들로 활기를 띤다.

인천에 사는 주정자 씨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여동생과 함께 고향에 내려왔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대신해 찻잎을 따기 위해서다. 어릴 때는 밭일을 하는 게 싫어서 어머니와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 바구니라도 더 따드리고 싶은 마음에 출발 직전까지 차밭을 떠나지 못한다.

아버지 혼자서 따기엔 너무 힘들잖아요. 부모님 생각하는 그 마음 하나로 온 거죠. -주정자-

광주에 사는 안현남 씨는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형제들과 함께 소매를 걷어부쳤다. 홀로 6남매를 키우기 위해 평생을 차밭에 바친 어머니. 안현남 씨는 어머니와 같이 찻잎을 땄던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가 혼자 외롭게 사셨던 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요. 더 잘할걸. 한번이라도 더 올걸. -안현남-

주병석 씨는 아버지의 다원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50여 년 전, 아버지가 직접 개간해서 지금까지 일구어온 밭이다. 처음에는 농사에 큰 관심이 없었던 주병석 씨. 그러나 지금은 차 덖는 소리만 들어도 행복하다며, 이런 소중한 터전을 물려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게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주신 분이죠.저에게는 소중한 분이고, 아버지가 선택을 잘하셨다고 생각해요. -주병석- (사진:KBS '다큐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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