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박은경 기자 = 14일, ‘SBS 스페셜’에서는 서로 다른 남들이 모여 꾸린 대가족, ‘공동체, 은혜’를 <간헐적 가족>이라는 관점으로 조명한다.

시작은 일주일에 한 번, 작은 모임이었다.

핵가족마저 지탱하기가 어려워진 시대. 이웃도 사라지고 마을도 소멸했다. 그러나 가족이 주었던 유대감과 안정감은 여전히 귀중한 자원이기에 ‘가끔만이라도 가족’이 되어줄 사람을 절실히 찾고 있다.

서울 도봉구 안골마을. 그 바람을 실현한 사람들이 있다. 혈연은 아니지만 외로움의 극복을 위해 혹은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 주 1회, 그저 작은 만남을 가져오던 것이 발전해 함께 모여 살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두 팔 걷어붙여 집까지 짓게 되었다.

평소엔 각자 생활에 집중하지만 가끔은 서로의 엄마, 아빠, 오빠, 누나, 삼촌, 이모와 같은 가족의 역할을 해주는 ‘간헐적 가족’을 이루며 살 게 되었다. 외로운 싱글 여성들이 모여 더 많은 남을 만나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 ‘공동체 은혜‘

√ 아이 돌보미가 된 싱글들

“한 달에 4시간만 아이를 돌봐도 되니, 엄마들한테는 행운인 것 같아요”

“이 시간이 천국이다”

‘공동체, 은혜’의 엄마들은 이곳이 천국이라고 말한다. 평일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한 달 고작 4시간. 이외의 시간은 모두 자유다. 그렇다면 이들의 아이들은 누가 돌보는 걸까?

고등학교 음악 교사인 정현아 씨는 올해 37살, 미혼이다. 평소 쉬는 시간엔 여가나 쇼핑을 즐기고, 여행도 하는 평범한 싱글 여성.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이곳의 유치원생 아이들 7명 정도를 돌보는 당번이 된다. 다 함께 떠나는 소풍 날 역시, 아이들 돌봄은 싱글들의 차지다.

아이가 없으니 당연히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싱글이지만 이곳에서 함께 살며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유치원생을 돌보는 ‘간헐적 이모’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돌봄 시스템. 아이도 없는 싱글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 아이디어가 깃든 건물이 주는 힘

이 집에 사는 50명 중 8명은 싱글 여성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한 층에 모여 산다. 여성들만이 모여 사는 공간답게 다른 곳과는 달리 파우더 룸과 조용한 독서 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귀부인이 된 느낌? 어떤 왕국의 여왕이 된 느낌?”

시간이 날 때면 도봉산이 보이는 옥상 노천탕에서 스파도 즐긴다. 물장구를 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족욕과 동시에 와인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모두 함께 만족하며 살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다 같이 아이디어를 짜낸 덕택이다. 소통을 위해 공간마다 문을 없앴고, 지하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커다란 강당까지 만들었다. 모두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건물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 아이들마저 스스로 깨우치며 자라게 했다.

온 집 안이 놀이터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뛰면서 자란 아이들은 누구보다 밝고 건강해졌고, 여럿이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규칙이 생겼다. 함께 어울리기 위해 만든 규칙을 아이들은 불평하지 않고 지킨다. 아이디어가 깃든 건물은 공동체 살이를 좀 더 풍부하고 윤택하게 만들었다.

√ 함께 어울리며 풍성해지는 삶

이곳에 사는 또 한 명의 싱글 여성 이지연(37세) 씨의 직업은 변호사다. 직장은 서울 서초구. 강남에서의 화려한 생활 대신 편도 1시간 30분의 긴 출퇴근 시간을 감수하고 이곳에서 사는 것을 택했다.

“아이들이 너무 밝아요. 같이 있기만 해도 힘을 받는 느낌”

이지연 씨는 청소년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곳의 청소년들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춤도 배운다. 작년엔 영화도 같이 찍었다. 매일 바쁜 일상과 복잡한 사건에 머리를 싸매는 그녀지만 주 1~2회 취미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간헐적 조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기에 풍요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 고시원 생활 10년, 크리에이터 최미정 씨의 ‘간헐적 가족’ 체험

고시원 생활만 10년. 출퇴근 외엔 사람 만날 일 없는 최미정 씨는 인터넷 개인 방송이 유일한 소통의 시간이다. 명절 외엔 가족도 자주 안 만난다는 그녀가 사람 많은 공동체, 은혜에 들어가 ‘간헐적 가족’이 되어보기로 했다.

“제가 생각했던 사람들하고는 너무 아주 달랐어요. 여기 사람들은”

매일 마주치는 고시원 사람들과의 눈빛 교환조차 불편하다고 했던 최미정 씨. 어색함과 낯섦으로 시작했던 공동체 살이지만 함께 먹고, 자고, 얘기하고, 놀며 소통하니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굳었던 표정은 화사한 웃음으로 번지고, 겨우 인사만 할 정도로 쭈뼛대던 그녀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집이 이곳의 사람들이 대체 어떻기에 그녀를 달라지게 한 걸까?

√ 공동체 실험은 계속된다

서로 다른 50명이 함께 모여 집 짓고 산 지 3년째. 처음엔 그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끔 만나는 관계에서 집까지 지어 함께 사는 사이가 됐고, 누구는 결혼한 부부가, 누구는 아이의 부모가, 누구는 이모, 삼촌이 되며 새롭게 관계가 형성되고 발전해왔다. 처음부터 지금의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설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앞으로의 미래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실험적 공동체 생활. 때론 진짜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간헐적 가족’은 서로에 대한 신뢰 하에 아직도 함께 살아가는 실험 중이다.

‘남’들이 모여, 시대를 역행하듯 작은 마을 혹은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공동체, 은혜’의 이야기. 14일 일요일 밤 11시 5분 ‘SBS 스페셜‘ <간헐적 가족>에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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