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다리에 파스는 기본…"동료 사망 때마다 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우정노조, 다음 달 9일 총파업 예고…'우편 대란' 우려

(홍천·대전=연합뉴스) 박영서 김준범 기자 = "솔직히 쉴 시간이 전혀 없어요. 오늘 다 배달을 해야만 끝나는 업무니까요.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칠 수밖에 없죠"

28일 오전 8시 30분, 강원 홍천우체국 정문 셔터가 채 오르기도 전에 20년 차 집배원 황병재(50)씨가 무거운 우편물을 가득 싣고 배달에 나섰다.

도심을 뒤로하고 외곽으로 한참을 달린 그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주유소. 100㏄ 오토바이에 휘발유를 한가득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페트병까지 꺼내 들어 가득 채웠다.

하루 평균 130∼150㎞를 달리는 그에게 휘발유 4ℓ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처럼 직장 동료가 자리를 비워 그가 짊어져야 할 우편물 양도, 주행거리도 더 많은 날은 예비기름이 필수다.

동료가 병가나 휴가로 자리를 비우면 옆 동료들이 구역을 나눠 돕는 '겸배'(兼配)는 집배원들만의 직장 문화다.

황씨가 맡은 지역은 홍천 화촌면 내삼포리, 군업리, 장평리다.

하루 평균 배달하는 우편물은 도심을 누비는 동료와 비교해 적은 양이지만,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절대 쉽지 않다.

황씨가 오가는 곳은 다니는 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을 깊숙이 자리 하고 있다.

이동 중에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울을 닦기 위해 잠시 그늘에 앉아 있다가도 황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시 힘을 내 몸을 일으킨다.

그는 "배달할 때 주민들께서 가끔 고추나 오이 등 농산물을 주시기도 하고, 힘든 걸 알아주시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주실 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옥수수밭 사이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등을 밥 먹듯이 달려야 하는 그에게 가장 두려운 건 첫째도, 둘째도 '안전사고'다.

귀농·귀촌 인구가 부쩍 늘면서 배달양도 양이지만, 배달 거리와 위험성이 곱절은 늘었다.

콘크리트 하나 없는, 땅 곳곳이 움푹 팬 두메산골로 들어서자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주행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비가 많이 오면 도저히 갈 수 없어 '도강불능'으로 처리하거나, 눈이 올 때는 바퀴 자국을 따라 이동하는 오지 중 오지다.

전기차를 받더라도 다니기 힘든 길이 수두룩하고, 배터리 용량이 적어 예비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상 황씨 같은 집배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휴대전화조차 '서비스 안 됨'이라고 뜰 정도로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우편물을 우편함에 꽂고 나서야 그는 한숨을 돌렸다.

이렇게 매일 일하다 보면 몸은 성한 데가 없다.

부러지지만 않는 이상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좋은 일로 휴가를 써도 마음이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제가 쉬면 다른 집배원이 제 물량을 담당해야 하니까 아파도 마음이 불편해서 병원에 갈 수가 없어요."

그렇게 황씨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우편배달을 시작했다.

집배원들의 노고는 복잡한 도심 속에서도 이어진다.

28일 대전 한 대학가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집배원 권오석(42) 씨의 상의는 이른 아침부터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는 빼곡히 붙어있는 다가구주택 건물을 바쁘게 옮겨 다니면서 거친 숨을 연신 내쉬었다.

도시 집배원은 시골과 비교해 이동 거리는 짧지만, 상대적으로 배달 물량이 많고 건물 내부를 온종일 오르내려야 한다.

권씨는 오토바이에 쌓인 우편물을 정리하면서 "쉴 시간 없이 빨리 이동해야 하루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가는 신학기가 시작되면 물량이 한꺼번에 몰려 매년 힘든 상황이 반복된다고 권씨는 설명했다.

과부하에 걸린 권씨와 동료들은 허리, 다리 등에 파스를 붙이고 지내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전국에서 동료가 잇따라 숨지는 일이 발생하자 정신적인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고 집배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권씨는 비슷한 사고가 생길 때마다 집배원 사기가 꺾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변에서 쓰러지는 동료를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몸이 아픈 건 견딜 수 있지만 당장 오늘 나와 동료들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더 힘들다"고 호소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집배원들의 잇따른 사망원인으로 겸배를 꼽는다.

예비 인력이 없어 집배원 1명이 연차나 병가 등을 사용하면 다른 집배원이 초과 물량을 떠안게 되면서 업무부담을 가중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권씨는 "일단 업무가 많고 담당자가 아니면 배송지 주소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기도 어려워 힘든 근무가 될 수밖에 없다"며 "집배원 생존권과 건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다음 달 9일 파업을 예고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인력 증원, 근로시간 단축 등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우정노조는 주 52시간 근무제도 시행이 오히려 집배원 업무부담을 가중하고 있다며 업무축소에 따른 임금 보전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예산 부족과 국회 심의 사안이라는 이유로 우정노조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우편 대란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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