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불렸을 때 현실 아니라고 생각"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문학상 파이널리스트는 (시상식장에) 도착하면 무조건 1만불을 준다고 해서 1만불 받으러 갈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고, 저의 번역자도 '우리는 동양인에다 여자라서 절대 상 못 받아요. 우리는 1만불 받고 축제나 즐겨요'라고 해서 거기에 갔죠."

한국인 최초로 '그리핀시문학상'(The Griffin Poetry Prize)을 받은 김혜순 시인은 25일 사실 수상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날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다.

그리핀시문학상은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기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인 스콧 그리핀이 2000년 창설했다. 국내와 국제 부문 각 1명에 수여하며, 상금은 각 6만5천 캐나다 달러(한화 약 5천750만원)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된 고은 시인이 2008년 공로상(Lifetime Recognition Awards)을 받은 적은 있지만, 본상 수상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아시아 여성을 통틀어서도 김 시인이 이 상을 최초로 받았다. 우리 문학계에선 이런 점을 들어 김 시인을 "아시아권 시인으로는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시인"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나온다.

김 시인은 번역자인 재미 교포 최돈미 시인에게 많은 공을 돌렸다. 영어로 번역된 시집에 주는 상이므로 상금의 많은 부분을 번역자가 가져간 것에도 불만 없다고 했다.

"당연히 번역자를, 영어를 쓴 사람에게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번역자에게 상금이 가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는 아시아 여성 시인으로는 처음 이 상을 받은 소감에 대해 "낭독회와 시상식장에 아시아인은 없고 백인만 있었다. 전혀 예상 못 했다"면서 "그런데 제 이름이 불렸을 때 너무 놀라서 '이건 아마 현실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시작(詩作) 활동을 하느냐고 묻자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런 얘기는 제발 하지 말라"면서 "그건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시 그만 써', '소설 그만 써'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자신의 시를 영어권에 소개해주는 통로인 최 시인과 소통이 잘 된다고 했다. 그는 "서로 개인사까지도 많이 소통한다"면서 "(시가) 어느 사건의 층위에서 이 시가 어떤 현실의 베이스를 가졌는지 서로 소통한다"고 말했다.

김 시인이 최 시인을 만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최 시인이 김 시인의 작품을 읽고 번역하고 싶다며 먼저 서울로 찾아왔다고 한다. 평소엔 이메일로 소통하지만, 올해는 서울예대 교수직 안식년이어서 함께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지를 함께 다니며 낭독회를 열었다. 최 시인은 현재 김 시인이 올해 출간한 시집 '날개와 환상통'을 번역 중이다.

김 시인은 수상작 '죽음의 자서전'에 대해선 "죽은 자의 죽음을 쓴 것이라기보다 산 자로서 죽음을 쓴 것"이라며 "내가 죽음과 같은 순간에 처했을 때 주변 지인과 사회적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을 썼으므로 '산 자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죽음의 자서전'에 시 49편을 실은 이유가 '49재'와 관련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자가 49일간 죽음의 소용돌이를 건너가는 것을 염두에 뒀다"면서 "더 많이 썼는데 49편으로 잘랐다. 더 멋있게 보이려고"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가장 아프게 기억되는 시는 '저녁 식사'라는 시"라며 "그 시에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최근 모친상을 당했다.

1979년 등단한 그는 시집으로 '죽음의 자서전', '또 다른 별에서', '피어라 돼지',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등을 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고,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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