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외무상 "받아들일 수 없다" 회견에도 당국자 "직접 만나 거부입장 밝히진 않아"
피해자 측도 "사과 내용없어" 지적…정부가 대안낸 것은 日·피해자 모두 긍정 평가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정부가 19일 공개한 '한일기업이 위자료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해법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물론 피해자 측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이 해법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피해자나 한국 및 일본 기업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본 정부와 공감대도 없는 상태에서 내놓은 해법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여전히 "일본 정부의 진지한 검토를 희망한다"면서 이 방안이 한일관계를 뒤흔든 강제징용 논란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19일 오후 한국 정부가 내놓은 제안에 대해 "국제법 위반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일본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한국 정부가 해법을 공개한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국가간 조약으로 국제법과 다름없는 효력을 지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이 방안이 최종적으로 거부된 것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일본 정부 관계자가 회견 등을 통해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 한국 정부 관계자와 직접 만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지난 16∼17일 일본을 방문해 이 방안을 설명했을 때도 일본 측에서 수용 여부를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19일 오전 김경한 주일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했을 때도 중재위 구성에 관해서만 얘기했을 뿐 이 방안에 대한 거부 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노 외상이 전날 한국 정부의 제안을 거부한다고 하면서도 "한국 측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해주는 것은 매우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이번 제안이 한일관계의 분위기가 호전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은 사인간 문제로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현실적 방안"이라며 "일본 정부의 진지한 검토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측도 정부 해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9일 자료를 내고 "한국 정부 입장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인정'과 '사과'에 대해 아무런 내용이 없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절차적 측면에서도 한국 정부 입장 발표 이전에 대리인단 및 지원단을 포함한 시민사회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피해자 측과 사전에 교감하지 않은 것은 '사인 간 거래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른 측면이 크지만, 이제라도 피해자 측을 대상으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시간을 갖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시민모임도 "한국 정부 입장 전달은 양국 간 협의를 개시하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출연 대상이 될 수 있는 한국 기업들은 일단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돼 출연 대상 1순위로 꼽히는 포스코는 "외교 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이라 확인 중이다.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출연 가능성이 제기되는 다른 기업들도 "금시초문"이라며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사전 협의없이 불쑥 발표된 제안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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