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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빙하가 만든 불후의 걸작

[travel abroad] 빙하가 만든 불후의 걸작

  • 임동근 기자
  • 승인 2019.06.12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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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스트란=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머리칼이 쭈뼛 서는 극한 떨림을 만끽하고 싶다면 노르웨이 피오르로 가라.

가파른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서거나 수직 절벽을 기어오르면 가슴 철렁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가슴 터질 듯 장엄하고 신비로우며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그 멀고도 턱없이 비싼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

네뢰위피오르 [사진/임동근 기자]
네뢰위피오르 [사진/임동근 기자]

◇ 고속단정으로 돌아보는 네뢰위피오르

쾌속선은 오후 4시가 넘어 베르겐 항구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4월은 날씨 변화가 무척 심하다"는 마리카 클라우스 씨(베르겐 가이드)의 말처럼 베르겐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더니, 그곳을 떠나자마자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피오르를 가르는 세찬 바람에 추워지며 점퍼를 걸쳐야 할 지경이었다. 비, 갬, 흐림을 반복한 날씨. 2시간여를 북상하던 쾌속선은 드디어 송네피오르(Sognefjord)로 진입했다.

송네피오르는 길이 204㎞, 최저수심 1천300m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길고 깊은 피오르다. 침엽수림이 뒤덮은 풍경 뒤편으로 거대한 암반을 머리에 인 산과 가파른 절벽이 도열하고 있다. 수면 위에 올라선 해발 1천700m를 넘는 봉우리들은 그야말로 거대하고 웅장하다. 그 장대함에 압도돼 저절로 고개가 숙어질 지경이다.

피오르 여정의 첫 방문지는 발레스트란. 이곳에선 송네피오르와 네뢰위피오르(Nærøyfjord)를 돌아볼 수 있다. 관광안내소 앞 선착장에서 고무 재질의 12인승 고속단정(RIB)에 오르기에 앞서 두툼한 상하 일체형 방한복을 입고, 고글을 착용했다. 보트는 최고 90㎞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고, 폭포 앞에선 물벼락을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초록빛 수변에 그림 같은 마을이 들어서 있고, 나무들은 하얗고 노란 꽃망울을 탐스럽게 터뜨렸다. 마을 뒤 침엽수림 뒤편 멀리에는 하얀 눈을 뒤집어쓴 산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따스한 봄과 차가운 겨울이 하나의 화폭에 담긴 풍경화 같다.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 [사진/임동근 기자]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 [사진/임동근 기자]

보트가 속도를 내더니 이내 120m 높이에서 물을 쏟아내는 크비나(Kvinna) 폭포 앞에 당도했다. 폭포는 괴수처럼 굉음을 낸다. 물줄기가 얼마나 세찬지 불과 몇 초 사이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에 탄성을 자아내던 폭포는 지겨울 정도로 자주 나타났다. 아니, 모든 절벽에는 폭포수가 끈으로 묶은 듯 수직의 하얀 띠를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피오르의 변화무쌍한 광경은 너무도 경이로워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들었다.

동쪽으로 향하던 보트가 남쪽으로 접어들자 수로의 폭이 이전보다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다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자 폭은 더 비좁아졌다. 바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네뢰위피오르다. 이곳은 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피오르 중 폭이 가장 좁다. 양옆의 웅장한 바위산과 깎아지른 절벽,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가 손에 잡힐 듯하다.

물길 한쪽 조그만 바위 위와 인근에선 물범 4∼5마리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보트가 지나고 방문객이 손을 흔들어도 익숙한 듯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이곳 피오르는 생물 종이 다양한데 최근에는 범고래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피오르엔 전기유람선도 등장했다. 환경을 보존하고 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조용하기까지 해서 동물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피오르 유람선은 조만간 모두 전기 동력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가파른 절벽 아래 초지에 자리한 그림 같은 마을 몇 개를 지나고, 네뢰위피오르의 끝에 있는 구드방엔(Gudvangen)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피오르 보트 관광은 물론 하이킹, 카야킹 등을 할 수 있다. 바이킹의 대장간을 둘러보고 도끼 던지기, 활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바이킹 체험마을(Viking Valley)도 있다.

바이킹 체험 마을에 전시된 바이킹의 배 [사진/임동근 기자]
바이킹 체험 마을에 전시된 바이킹의 배 [사진/임동근 기자]

◇ 흥미로운 발레스트란 도보 여행

3시간여의 피오르 보트 관광 후에는 발레스트란 도보 여행에 나설 차례. 융단 같은 풀밭 위에 하얗고 노랗고 빨간 집들이 수변을 따라, 또는 초록빛 언덕 위에 들어서 있다. 풀밭에는 노란 꽃이, 비탈 사과밭에는 하얀 꽃이 만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지붕 끝에 용머리 장식이 달린 고풍스러운 건물들. 이런 용 스타일(Dragon Style) 건축물은 바이킹 시대와 중세에서 유래한 디자인으로 1880∼1910년에 유행했다고 한다.

빛바랜 회색 지붕, 붉은 벽, 초록빛 테라스가 있는 고택 지붕에는 하얀 용 4마리가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우리 궁궐 지붕의 용 장식처럼 사악한 기운을 쫓기 위한 용도라고 한다.

발레스트란 마을 풍경. 오른쪽에 용 스타일 건물이 보인다. [사진/임동근 기자]
발레스트란 마을 풍경. 오른쪽에 용 스타일 건물이 보인다. [사진/임동근 기자]

1897년 건축된 성공회 교회인 성 올라프(Saint Olaf) 교회도 시선을 끈다. 진한 갈색 벽면에 노란색으로 테두리를 두른 건물로 십자가 아래 지붕에 용머리 장식이 달려 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엘사의 대관식 장소는 바로 이 건물을 모델로 했다.

발레스트란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선착장 인근의 크비크네스(Kviknes) 호텔. 외관은 현대적이지만 역사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건물이다.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노르웨이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유명해졌다.

호텔 1층에는 당시 그린 풍경화가 여러 점 걸려 있고, 빌헬름 2세가 사용한 의자도 놓여 있다.

성 올라프 교회 [사진/임동근 기자]
성 올라프 교회 [사진/임동근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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