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재판서 25분간 작심 비판…"재판서 법의 지배냐, 검찰 공화국이냐 결정"
박병대 "재판거래·사법농단 말잔치만 무성"…고영한 "진실, 명명백백 밝혀지길"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소설의 픽션"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8개월간 이어진 수사를 두고도 "수사가 아닌 사찰"이라거나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정식 재판에서 25분간 직접 발언을 하며 검찰에 날을 세웠다.

그는 우선 "검찰이 말한 공소사실의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같은 이야기"라며 "모든 것을 부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 생활 42년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본다"며 "법률가가 쓴 법률 문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비꼬았다.

특히 "법적 측면에서 허점과 결점이 너무 많다"며 "가장 필요한 법원 재판 절차나 법관의 자세, 이런 측면에 관해 (검찰이) 너무 아는 것이 없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공소장 첫머리에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행한 듯 재판으로 온갖 거래행위를 획책했다고 하고는 결론 부분에 이르면 재판거래는 온데간데없고 심의관들에게 문건·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게 직권남용이라고 끝을 낸다"며 "용은커녕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온 장안을 시끄럽게 하더니 그런 리스트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통상적인 인사를 갖고 블랙리스트로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보잘것없는 내용물을 갖고 포장만 근사하게 해서 내놓는 상품이 꽤 있는데 그런 포장들이 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에 빗대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에 온통 '∼ 등'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면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도 비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뭘 갖고 방어를 해야 하냐. 재판부는 뭘 갖고 심리를 해야 하냐"며 "마치 권투를 하는데 상대방의 눈을 가리고 두세 사람이 한 사람을 때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재판 심리를 빨리하자고 재촉하는 건 "축구장에 금을 그어놓지 않고, 골대도 세우지 않고 축구경기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여과 없는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내 취임 첫날부터 퇴임 마지막 날까지 모든 직무 행위를 샅샅이 뒤져서 그중에 뭔가 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는가를 찾기 위한 수사였다"며 "심지어 내 전임 대법원장 때까지 들춰냈던 것이 보였는데 이게 과연 수사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며 "어떤 사람의 처벌 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는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이자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런 수사야말로 권력의 남용"이라며 "법원에 대해 이런 수사를 할 지경이라면 대한민국 어느 국민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를 적용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이 효과적인 무기를 개발했다"면서 "이것이 모두 유죄가 된다면 우리 공직 사회 중 일을 좀 하고 싶어하는 공직자들은 나날이 직권남용죄를 쌓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법의 지배가 이뤄지는 나라가 될 것이냐, 아니면 무소불위의 검찰 공화국이 될 것이냐는 이번 재판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박병대 전 대법관도 "검찰 공소장은 알맹이, 실체보다는 부적절한 보고서 작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며 "재판거래니 사법농단이니 말 잔치만 무성했다"고 비판했다.

또 "검찰 수사기록을 보니 많은 법관이 때로는 겁박당한 듯이 보이고 때로는 훈계와 질책을 받은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권분립의 원리·원칙보다는 현실적인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법원의 대외적 관계에서 사법행정은 어느 지점까지 고고해야 하는지 다각도 조망까진 바라지도 않는다"며 "다만 모든 사법행정이 법관을 옥죄려는 책략으로 물들었는지, 조직 이기주의의 발상이라고 함부로 폄하해도 되는지 최소한만이라도 밝혀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후배 법관들로 이뤄진 재판부에는 "마주 대하기 어려울 만큼 민망할 따름"이라면서 "피고인이 법조 선배라는 생각은 접고 사리를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도 "이 재판을 통해 그간 잘못 알려진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재판부에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신중하고 냉철하게 판단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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