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예술정원'展 작은무대서 '재능기부' 특별공연
"伊정부 훈장·기사작위, 젊은 예술가들에게 더 도움 줄 계기"
"'휠체어 그네' 등 사회적 활동 늘릴 것…새앨범 '마더', 국민께 위안되길"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의 도심 한복판 야외에 소프라노 조수미가 섰다.

조수미가 선 곳은 가로 2m, 세로 3m 정도의 작은 간이무대였다. 작은 잔디광장의 피아노 옆에서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수미에겐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한 후 아마도 가장 작은 무대 중 하나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석현, 김승회 작가가 작업한 'Das dritte Land : 제3의 자연'전(展)의 오프닝 공연이었다.

이 전시는 남북한의 야생화 60여 종과 기암괴석을 초현실적인 백두대간으로 형상화한 예술정원이다. 30년 전 베를린을 동서로 가른 장벽 인근이다.

조수미는 이번 전시에서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왔다. 최근 새 앨범 '마더'(Mother)를 발표해 스케줄에 여유가 없었지만, 힘들게 조정했단다.

조수미는 특별공연 직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능기부를 하게 된 몇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 분단 및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남북의 교류와 평화를 기원하는 취지의 전시를 지원해주고 싶었단다.

"지금은 한반도 상황이 좋지 못한데요, 정치에서 풀지 못하는 부분에서 예술가들이 작은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취지가 매우 좋은 전시잖아요. 기획과 달리 북측이 참여를 안 한 점이 아쉽지만, 진심을 가지고 가다 보면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작은 무대에 서는 느낌을 물었다.

"이런 무대에 서본 적은 거의 없던 거 같아요. 그러나 음악인들이 항상 오페라하우스나 스타디움에서만 공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무대가 작고 관객이 적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수미는 2015년에도 베를린에서 공연했다. 당시는 대형무대였다. 독일 분단기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열린 유라시아 친선특급 폐막 음악회였다.

이번 재능기부를 결정하는 데에는 전시 소식을 듣고선 당시의 느낌이 되살아온 탓도 있단다.

"브란덴부르크문 앞 공연 때 울컥했어요. 앙코르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어요. 그때, '더 이상 금강산이 갈 수 없는 곳, 그리워할 곳이 아니어서 더 이상 이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재능기부를 결정하는 데는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다고 한다.

그에게 '예술 창작 인큐베이터' 역할에도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 장르를 떠나 젊은 예술가들이 뻗어 나갈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예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이 고된데, 혼자서만 할 수는 없어요. 주변에서 도와줘서 알려 나가서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받은 만큼 돌려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책임감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오프닝에는 600여명의 교포와 독일인들이 몰렸다. 조수미의 공연 소식이 상당한 흥행 요소였을 터다.

주최 측의 넉넉하지 않은 사정으로 자칫 MR(Music Recorded·반주 음원)을 틀고 노래를 부를 뻔했으나, 조수미의 재능기부 소식에 주독 한국문화원에서 피아노 대여 비용을 부담했다.

조수미는 북한에서의 공연을 꿈꾸고 있다.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이런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특별히 염두에 둔 공연 장소가 있는지 물었다.

"예술인들이 편안하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 배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음악으로 감동을 주고 싶어요. 예전에 북측에서 간접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쳐달라'는 요청도 온 적도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를 위한 문화외교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나서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기회만 된다면 하고 싶습니다"

조수미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한국에서 '마더' 발매 기념 투어 공연을 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인 '마더'는 최근 발매 3주 만에 1만장을 돌파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어머니들, 국민에게 따뜻한 선물을 드린 것 같아 뿌듯해요. 앞으로도 매년 어버이날에 '마더'의 노래가 따뜻한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조수미는 최근 이탈리아 정부가 주는 친선훈장과 기사(Cavaliere) 작위를 받았다.

"로마로 공부하러 올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이런 대우를 받게 된 데 대해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작업에 더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에서 대우를 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어요"

하반기 활동계획을 물었다.

"한국과 이탈리아 간 문화 교류 확대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내년에 러시아어로 앨범이 나오는데, 그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속해온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그네 기증 활동과 동물보호소 지원 활동에도 더 신경을 쓰고 싶습니다"

전시장은 베를린의 주요 상징물인 베를린 필하모니의 바로 옆이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 측은 베를린 필하모니를 동독을 의식해 더 웅장하게 지었다.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인근 베를린 장벽 너머에 있는 동독 시민들에게 서독의 건축기술과 자본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단다.

세계적인 콘서트홀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담겨있는 아픈 역사다.

조수미는 3곡을 부른 뒤 앙코르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베를린 필하모니를 넘어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까지 충분히 울려 퍼질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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