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하틸 교수 등 연구진, 유럽 7개국 조사결과…"가해자는 코치가 대부분"
"스포츠계 '침묵의 카르텔'…엘리트체육 육성방식 바꿔야"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스포츠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절반은 피해자가 12세 이하 어린이 때 경험했다는 해외 조사결과가 나왔다.

마이크 하틸 영국 엣지힐 대학교 부교수는 2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주최로 열리는 제16회 국제심포지엄에 앞서 낸 발제문에서 유럽 7개국 성폭력 피해자 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조사결과를 소개했다.

하틸 교수 발제문에 따르면 독일과 스페인 등 유럽 7개 국가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남녀 성폭력 피해자 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2명(44.4%)이 12세 이하 나이 때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어 피해 나이가 13∼15세는 18명(25.0%), 16∼18세 10명(13.9%), 19∼25세·26세 이상이 각 5명(6.9%), 나머지 2명은 관련 정보가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1년 이상 성폭력이 지속했다고 답한 사람은 50%였다. 약 1년이 15%, 6개월 이내 12% 등이었다.

성폭력이 발생한 조직이나 단체를 묻는 질의(복수응답 허용)에 '스포츠 클럽'이라는 답이 63.0%(46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숙사 스포츠 학교'가 16.7%(12명), '스포츠 연맹'과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가 각 6.9%(5명), '체육 교육기관'과 '대학 스포츠'는 각 5.6%(4명) 등이었다.

가해자의 역할과 지위로는 '코치'가 77.8%(56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해자들이 뛴 스포츠 종목으로는 축구가 22.2%(16명)로 가장 많았고, 체조 12.5%(9명), 육상경기 8.3%(6명) 등의 순으로 파악됐다.

한 피해자는 하틸 교수가 발췌해 소개한 인터뷰에서 "가해자는 코치였어요. 제 아버지와 동갑입니다. 아버지와 너무도 잘 지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뭔가 말한다면 모든 것을 망치고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늘 생각했어요"라고 피해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하틸 교수는 스포츠계 성폭력 가해자 주요 특징으로 매우 존경받는 인물, 권위와 우월한 지위가 있는 사람, 호의적이고 친절한 친구같은 사람 등을 꼽았다.

독일 등 유럽 연구진과 함께 진행한 이번 조사는 '진실과 존엄성을 위한 목소리(Voices for truth and dignity)'라는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앞서 결과는 지난해 5월 엣지힐 대학 홈페이지 등에 소개됐다.

하틸 부교수는 "스포츠 내 성폭력의 존재를 인정하라"면서 "조직 차원의 대응 개선을 위해 (피해) 당사자의 살아있는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라"고 제언했다.

'스포츠 #미투, 국제적 현황과 대응'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꼽히는 노르웨이가 스포츠계 성폭력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소개되기도 했다.

하바드 오브레가드 노르웨이 올림픽 패럴림픽 위원회 선임고문은 '스포츠 내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에 대한 예방 및 조치-노르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라는 주제 발표문에서 "노르웨이는 스포츠 내 모든 형태의 차별 및 성적 괴롬힘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스포츠 클럽은 차별과 성적 괴롭힘이 자신의 단체에 발생한 적이 있는지, 현재 발생하고 있는지, 또는 향후에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포지엄 토론자로 나선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토론문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도 당사자 외의 사람들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스포츠계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위선양으로 대변되는 성과중심의 스포츠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스포츠문화를 혁신해야 한다"며 "엘리트체육 육성방식은 반드시 변화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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