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환자 급증세…호흡곤란·흉통·실신 등이 주요증상
'대동맥 판막 스텐트시술'·'신속거치 판막시술' 등 고려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경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김길원 기자 = 사람의 심장에는 투명하면서 얇은 4개의 '판막'이 있다. 이 판막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에 맞춰 열리거나 닫히며 혈액을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한다. 혈액의 역류를 막는 대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중 심장의 출구 부분인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위치한 '대동맥판막'은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려 수축했을 때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도록 활짝 열리기도 하고, 분출된 혈액의 좌심실 역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대동맥판막은 3개의 판엽(잎사귀 모양)으로 구성돼 있으며,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알파벳 'Y'자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판막이 좁아져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를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라고 한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생기면 심장은 좁은 판막을 통해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더욱더 강하게 수축하게 된다. 이를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다가 결국 심장 기능에 이상이 오면서 호흡 곤란, 흉통 및 실신 등의 증상이 발생하고, 급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퇴행성, 선천성, 류머티즘성 등으로 여러 원인이 있다. 가장 흔한 건 퇴행성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심장 판막에 칼슘이 침착돼 석회화가 진행하면서 생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2011년 5천800여명이던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는 2016년 1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66%가 70대 이상일 정도로 퇴행성 환자가 많다.

본래 3개의 판엽인 대동맥판막이 선천적으로 2개의 판엽으로 이뤄진 이엽성 대동맥판막 협착증도 있다. 퇴행성보다 이른 나이에 심한 협착증으로 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다.

퇴행성과 이엽성은 고령으로 갈수록, 병이 심해질수록 감별이 어려워 전문가의 세심한 판단과정이 필요하다.

류마티즘성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경우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경제상태, 위생상태가 호전되면서 현저히 감소하는 추세다.

가벼운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대부분 증상이 없다가 중증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신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기면서 운동 시 호흡곤란, 흉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실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등도 이상의 협착증에도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으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증상이 있으면서 청진시 심장 잡음이 들리면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만약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심장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상태를 진단해야 한다. 협착증에 동반하는 다른 판막 질환이나 관상동맥 질환, 대동맥 질환에 대한 평가를 위해 CT(컴퓨터단층촬영), 심도자술 등의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며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심각한 정도라면 판막 수술을 시행하는 게 표준치료법이다.

판막 수술에는 손상된 판막을 수선하는 '판막 성형 수술'과 새로운 판막으로 교체하는 '판막 치환 수술'이 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경우 심하게 망가진 판막 조직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첫 번째 원칙이다. 보통은 성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공 판막 치환 수술이 주로 시행된다.

인공 판막 치환술은 소나 돼지의 심장 조직을 이용해 만든 '조직 판막'과 탄소성분으로 만든 '기계 판막' 중에서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기계 판막은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혈액이 응고되면서 혈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와파린이라는 항응고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반면, 조직 판막은 항응고제를 일시적으로 복용하거나 아예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평균 15년 정도의 판막 수명이 지나면 망가질 수 있어 재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근래에는 고령이나 여러 기저 질환 때문에 수술 위험도가 높은 환자를 대상으로 비수술적 치료인 '타비' 즉, 대동맥판막스텐트시술(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 치료법은 대퇴동맥 혹은 심장끝부분(심첨부)으로 카테터를 넣어 협착증으로 좁아진 판막을 풍선으로 압력을 가해 넓혀준 뒤 조직판막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수술은 피할 수 있으나 병든 판막을 제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판막 주위 혈액 누출, 심장전도계의 이상, 뇌졸중 합병 등의 가능성으로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편이지만, 시술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점차 적응증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신속거치 판막'(Rapid Deployment Valve)이 개발돼 대동맥판막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고 있다.

신속거치 판막은 전 세계적으로 내구성이 증명된 조직판막에 신속거치 장치를 부착한 신기술 판막 재료다. 수술 시간을 현저히 줄여 고위험 환자의 수술 성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개 내외를 사용하는 기존 수술에 견줘 3∼4개 안팎의 봉합사 단순 거치로 판막을 넣을 수 있고, 심장 수술에 필수적인 심장 정지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이런 장점으로 심장 수술을 두려워하는 많은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수술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치료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비수술 심장시술인 타비의 단점으로 꼽히는 병든 판막 잔존, 판막 관련 합병증, 상대적으로 짧은 판막 수명 등의 우려가 없다.

대동맥판막질환은 대부분 퇴행성이어서 질환 자체를 예방하기란 쉽지 않다. 대동맥판막질환을 가진 환자는 질환이 더 진행하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면서 정기적인 진료를 통해 병의 진행을 수시로 파악해야 한다. 이와 함께 병이 진행된 경우 '골든타임'에 수술 치료를 시행하는 게 장기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 김경환 교수는 199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연수한 이후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흉부외과 영역 중 판막 및 대동맥 수술 분야 권위자로, 2016년 신속거치판막수술 분야에서 아시아 최초로 프록터(수술법을 전파·관리·감독하는 국제적 전문가)에 선정됐다.

올해 2월까지 총 112명의 대동맥판막질환 환자들을 신속거치판막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수술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정보운영실장, 의료정보센터 부센터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정보화실장을 맡고 있다. 대한흉부외과학회에서는 총무이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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