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개 선진국 운영 사례 조사…경사노위에 보고
노동계 "선진국 사례 도입하려면 노동시간부터 획기적으로 줄여야"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주 52시간제의 산업 현장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방안을 검토 중인 정부가 선진국의 다양한 탄력근로제 운영 사례를 연구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5개 선진국의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노동시간 제도를 소개했다.

선진국 사례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방안을 논의 중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에도 보고됐다.

노동시간 개선위원회는 노동부가 수행한 국내 탄력근로제 운영 실태조사결과와 선진국 사례 조사결과를 토대로 노동계와 경영계의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는 등 논의에 속도를 내 이달 중 결론을 낼 방침이다.

◇ 일본은 단위 기간 1년…연간 연장근로 360시간 제한

조사 대상 5개 선진국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사례는 일본이다. 한국과 노동시간 관련법 체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법정 노동시간도 1주 40시간, 1일 8시간으로, 한국과 같다.

한국의 현행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은 최장 3개월이지만, 일본은 1년이다. 일본도 단위 기간이 최장 3개월이었으나 1993년 1년으로 확대했다. 단위 기간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지 않으면 1주 40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해 노동시간이 1주 52시간, 1일 10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1년일 경우 연장근로도 360시간까지 제한된다.

사업장이 단위 기간 1년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노동자 대표의 동의를 받고 서면 협정으로 정해 행정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단위 기간 내 근로일수와 노동시간도 미리 정해 노동자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일본은 1일 업무량이 성수기와 비수기에 차이가 크고 노동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소매업, 여관업, 음식업 등에 대해서는 1일 노동시간을 취업규칙 등에 특정하지 않고 1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또 연봉 1천75만엔(약 9천858만원) 이상의 고소득 직종 가운데 업무에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노동시간과 성과의 관련도가 높지 않은 '고도 프로페셔널' 직종에 대해서는 노동시간, 휴식시간, 휴일 등 법규의 예외로 두기로 했다. 이 제도는 올해 4월부터 시행된다.

고도 프로페셔널 직종에는 금융 딜러, 애널리스트, 의약품 개발자, 시스템 엔지니어 등이 해당된다.

◇ 독일은 단위 기간 최장 6개월…노동시간 저축 계좌제

독일에서도 1일 노동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 1주 노동시간을 법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일요일 근무를 금지하고 있어 연장근로가 없으면 1주 노동시간은 48시간(8시간×6일)으로 계산된다.

독일은 탄력근로제에 관해서도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6개월 혹은 24주를 단위 기간으로 1주 평균 노동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1일 10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합의하면 1일 10시간 넘게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12개월 노동시간의 평균을 낸 1주 노동시간이 48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독일에서는 법규에 명확한 규정은 없으나 사업장별로 단체협약 등으로 '노동시간 저축 계좌제'를 운영하고 있다.

초과근무시간을 노동시간 계좌에 적립해 노동자에게 휴식으로 돌려주는 제도다. 정산 기간이 1개월이나 1년인 단기 계좌도 있고 그 이상인 장기 계좌도 있다. 장기 계좌의 경우 노동자가 적립한 초과근무시간만큼 육아, 재교육, 안식년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독일 연방노동청의 2010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독일 노동자의 24.1%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배정하는 데 노동시간 계좌제를 활용한다.

◇ 프랑스는 단위 기간 최장 3년…노동자 임금 보전 대책도 마련

프랑스는 법정 노동시간이 1주 35시간이고 연장근로 한도는 1년에 220시간이다. 1일 노동시간은 10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 법규 개정으로 산별 협약이 허용할 경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최장 3년까지 가능해졌다. 그러나 실제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3년으로 운영하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

프랑스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로 노동자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1주 노동시간 한도를 넘으면 연장근로로 간주하는 등 대책도 마련했다.

영국은 1주 노동시간 한도가 연장근로를 포함해 48시간이다. 탄력근로제는 17주를 단위 기간으로 해 1주 평균 노동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업을 포함한 일부 업종은 단위 기간을 26주(6개월)로 늘릴 수 있고 단체협약 등을 통해 단위 기간을 52주(1년)로 할 수도 있다.

미국은 법정 노동시간이 1주 40시간이고 연장근로 한도 규정이 없어 단체협약으로 정하게 돼 있다. 초과근무시간에 대해서는 1.5배의 할증 임금을 준다.

52주의 노동시간을 합해 2천240시간을 넘지 않으면 1주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도 할증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 국내 노동현실과 괴리…"노동시간부터 줄이는 게 순서"

정부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위한 참고 자료로 쓰기 위해 선진국 사례를 조사했지만, 국내 노동 현실과는 많이 달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016년 기준으로 국내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52시간에 달해 일본(1천724시간), 독일(1천298시간), 프랑스(1천383시간), 영국(1천694시간), 미국(1천789시간) 등보다 훨씬 많다.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비교도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탄력근로제와 같은 노동시간 제도에 선진국 사례를 도입하려면 노동시간부터 획기적으로 줄이는 게 순서에 맞는다고 지적한다.

주 52시간제를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김경선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전문가에 의뢰해 외국 사례를 조사했다"며 "외국 사례를 참고하되 결국은 국내 사정에 맞게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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