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기사, 피해자 곁에 일행 있어 보호할 거라 생각"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중국인 손님을 자동차전용도로 갓길에 내려줬다가 다른 차량 3대에 잇따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2부(이영광 부장판사)는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 A(54·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5월 2일 오후 11시 55분께 인천시 중구 영종도 자동차전용도로인 공항대로 갓길에 중국인 손님 B(43·여)씨를 내려주고 떠나 5분 뒤 다른 차량에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술에 만취한 B씨는 일행 2명과 함께 자동차전용도로에서 헤매다가 달리던 차량 3대에 잇따라 치어 다발성 장기손상 등으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조사결과 B씨는 사고 발생 30여분 전 영종도 공항신도시 한 편의점 앞에서 일행 2명과 함께 A씨의 택시를 탔다.

그는 운행 중인 택시 안에서 일행 중 1명과 말다툼을 하다가 발길질을 하고 신발을 벗어 때리는 등 몸싸움도 벌였다.

B씨는 조수석 문을 발로 차는 등 계속 난동을 부렸고, A씨가 "내리라"며 차량 문 잠금장치를 풀자 곧바로 도로 갓길에서 하차했다.

A씨는 "사고가 나면 위험하다"며 나머지 일행에게 B씨를 다시 태우라고 말했으나 일행들은 "그냥 가시라"며 요금을 내고 함께 택시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올해 10월 30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술에 만취한 피해자 등 3명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 줄 계약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며 "심야시간대 사람 통행이 불가능한 자동차전용도로에 내려줘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택시에서 내린 B씨를 우선 보호할 의무는 동승한 일행에게 있었다"며 "함께 하차한 일행이 B씨를 보호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유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는 또 "설사 당시 행위가 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유기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술에 상당히 취한 B씨를 야간에 보행자 통행이 금지된 고속도로 갓길에 내려두고 떠난 사실이 인정된다"며 "운송 계약상 택시기사는 승객 안전을 배려해야 할 보호 의무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유기치사로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B씨와 함께 내린 한 일행은 술에 취하지 않아 정상적으로 사리를 분별하고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있었다"며 "사회 통념상 피고인으로서는 B씨를 뒤따라 내린 일행이 그를 보호할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B씨 일행이 택시요금을 주며 그냥 가라고 말해 그 시점에서 택시기사와 승객의 운송계약은 종료됐다고 봐야 한다"며 "당시 하차한 B씨를 두고 떠난 행위가 유기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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