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생산 관여 사법정책실·지원실 하드디스크 대부분 제출 거부
검찰 "의혹 규명에 필수"…'양승태 하드디스크'는 넘겨받아 복구 시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법원행정처가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 등에 몸담으며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 문건을 작성했던 판사의 PC 하드디스크를 제출해 달라는 검찰 요구를 대부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일부터 법원행정처로부터 이 의혹에 관련된 전·현직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 파일을 임의로 제출받고 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기획조정실에서 사용된 하드디스크 이외에는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 소속 심의관들의 PC 하드디스크는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영한 대법관과 정다주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서울중앙지법으로 옮긴 뒤 사용한 하드디스크 역시 제출을 거부했다.

법원행정처는 기조실이 아닌 부서의 하드디스크는 의혹과 직접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일부는 내부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검찰은 기획조정실은 물론 법원행정처 내 다른 부서 역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문건 작성에 관여한 만큼 법원이 관련 파일을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 역시 이번 의혹과 관련성이 짙다는 점을 검찰은 강조한다.

사법정책실은 사법제도와 정책, 사법지원실은 재판절차 및 제도와 관련한 지원 업무를 하는 조직이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에는 각각 4명, 7명씩의 심의관이 근무했다. 특히 사법정책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추진작업의 주무부서였다.

대법원은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자체조사하면서 이들 부서 심의관 중 일부를 대면 조사했지만 하드디스크 내 문건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의 하드디스크에서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 심의관들이 작성한 의혹 문건들이 여럿 발견됐다.

사법정책실은 2015년 9월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원의 퇴직처분 취소소송과 관련해 재판장의 심증을 언급하고 각계 반응을 예측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했다. 이 문건은 사법정책실 심의관이 작성했고, 재판장의 심증을 알아본 것은 사법연수원 동기인 사법지원실 총괄심의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2015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재판의 쟁점과 법원 안팎 동향을 정리한 문건의 상당수는 사법지원실 형사심의관이 작성해 임 전 차장 등에게 보고했다. 해당 심의관은 법원 조사에서 대부분 문건에 대해 "기조실 요청에 따라 작성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대한 사찰 문건 역시 기조실은 물론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이 모두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임 전 차장은 기조실장에서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실·국장을 건너뛰고 심의관들에게 직접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는가 하면, 문건 작성자와 다른 부서에 소속된 심의관에게 보강 작업을 시키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에서 사용한 하드디스크는 각각 상고법원과 재판거래 의혹을 확인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라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심의관들과 문서파일을 주고받으며 문건 작성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문건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심의관들의 하드디스크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하드디스크 제출을 대부분 거부함에 따라 검찰은 일단 임 전 차장과 기획조정실 실장 및 심의관 3명 등의 하드디스크 10여 개를 이미징(복제)해 의혹 관련 자료를 추출하고 있다. 법원은 이들 하드디스크를 제외한 인사기록과 업무추진비·관용차량 이용 내역, 내부 메신저·이메일 등에 대해서도 임의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법원은 디가우징(강력한 자력에 의한 데이터 삭제 기술) 방식으로 손상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하드디스크 임의제출에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들 하드디스크를 건네받는 대로 복구를 시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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