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부동산 거래 암묵적 제도화…개혁·개방의 바로미터"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북한에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가 보편화하고 가격도 뛴다는 분석이 나왔다.

4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이 작성한 '북한 부동산의 가파른 성장세'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평양, 남포, 개성, 청진, 신의주, 나선 등에서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 가운데 평양의 고급별장은 거래가격이 제곱미터(㎡)당 약 8천달러(약 89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중 경협 기대감으로 단둥(丹東)과 맞닿은 신의주도 주택 매매가격이 ㎡당 5천 위안(84만원)으로 단둥과 비슷하다고 이 보고서는 전했다. 또 남포는 ㎡당 3천500∼6천 위안, 개성은 ㎡당 2천300~4천 위안, 청진과 나선은 ㎡당 1천 위안 수준으로 파악됐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주택용 토지와 부동산 재산권 모두 국가에 귀속돼 있으며 북한 당국이 주택을 일괄 건축·보수해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주민은 원칙상 주택에 대한 사용권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는 주택을 장기간 무상으로 빌릴 수 있는 사실상 소유주여서 사용권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에서 부동산 거래는 바로 사용권을 사고 파는 것이다. 북한 시·군 인민위원회의 도시경영과가 발급하는 '국가주택이용허가증'(입사증)에는 주택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명시돼있지 않으며 주택을 교부받은 후에는 상속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 주택 거래는 허가증에 사용자의 이름을 구매자의 이름으로 바꾸는 식으로 이뤄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이나 연합기업소의 주택지도원들이 부동산중개인 격으로 나서 허가증 명의 이전을 처리해주고 중개료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돈을 주고 주택 사용권을 넘기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허가증의 명의 변경은 편법일지라도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북한에서 부동산 거래는 불법도 아니고 합법도 아닌 회색 지대"라면서 "김정은 정권은 북한의 부동산 시장을 암묵적으로 제도화했다"고 설명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북한의 부동산 거래 활성화는 개혁·개방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코트라 보고서도 "북한에서 부동산 매입이 점차 보편화하고 있다"며 "평양에서 부동산 거래는 달러로, 중국 접경지역은 인민폐(위안화)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이 조금씩 이뤄짐에 따라 부동산 산업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며 "단기간에 부동산산업의 시장화 조치가 이뤄지지는 않겠으나 상업용 토지나 여행객을 위한 비즈니스 아파트 등의 개발이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주택난이 심각해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국가로부터 주택을 배정받는 일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되면서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4년 진행한 탈북자 설문조사에서는 돈을 주고 주택을 산 경우가 66.9%로, 국가에서 집을 배정받은 경우(14.3%)의 4.7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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