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승리=지역주의 타파' 정의하면서도 승리감 도취 경계
1990년 민자당 탄생 이후 지속한 지역주의 분열구도 타파에 남다른 감회
靑 참모·직원들에게 유능·도덕성·겸손 주문…선거 후 기강 잡아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여당 압승으로 끝난 6·13 지방선거 결과에 해이해질 수도 있는 청와대와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데 공을 들였다.

출범한 지 1년이 갓 넘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에서 여당이 이긴 데 기쁨과 안도의 감정을 내비치면서도 승리에 도취해 본분을 잊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여당의 선거 승리에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선거로 지역주의 정치, 그리고 색깔론으로 국민을 편 가르는 분열의 정치는 끝나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저로서는 제가 정치에 참여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이룬 셈"이라고 했다.

이어 "지역주의 정치, 색깔론에 의존하는 분열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성숙한 주권자 의식으로 새로운 정치를 마련해주신 국민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고 3당 합당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눈물 흘려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3당 합당은 1990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1987년 대선 이듬해의 총선 결과로 형성된 여소야대를 극복하려고 민의를 거스른 채 두 야당을 흡수해 만든 민자당의 출현을 가리킨다.

'영남 카르텔' 형태의 거대여당 탄생은 소수의 호남 야당을 고립시켜 '호남 지역과 그 지지세력을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었고 이는 한국정당정치의 혼돈과 왜곡을 가져와 '묻지마' 식 지역주의 대결정치를 강화했다.

이와 같은 이른바 '1990년 체제'가 지속해온 상황에서 그 시절 호남 소수 정파에 뿌리를 둔 민주당이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같은 지역주의 타파 '투사'형 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워 울산 외 부산, 경남에서 승리하고 대구, 경북에서마저 의미 있는 선전을 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남다른 감회를 느꼈고, 이를 "고통"이나 "눈물"이라는 감성의 단어를 동원해 표현했다.

문 대통령의 '운명'인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평생 동지적 관계를 이어온 송철호 당선인이 바로, 지역주의 타파를 앞세운 채 민주당 (계열) 간판으로 영남에서 선택받으려다 매번 좌절한 "고통"과 "눈물"의 주인공이었음을 물론이다.

문 대통령은 이처럼 지역주의 해체의 의미와 감회를 되새기면서도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려운 것"이라고 말해 기강이 해이해질 가능성을 자신부터 경계했다.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지지에 답하지 못하면 현 정권에 대한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새로운 각오로 국민의 기대에 맞게, 유능함으로 성과를 보이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에서 완패한 야권이 제대로 된 견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실정은 오롯이 청와대·공직사회의 책임으로 돌아오고 정권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운영위험요인 및 대응방안'을 보고하고 국정 성공 의지를 공유한 것 역시 과거 정권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2기'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문 대통령 임기 내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총선 사이를 2기라고 잠정적으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 승리를 새로운 출발로 정의하고 기강을 다잡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회의에서 청와대 참모들과 직원들에게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한 것에서도 이와 같은 분위기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번째는 '유능'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끄는 중추고 두뇌로, 청와대야말로 정말 유능해야 한다"면서 "각자 업무에 유능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협업 측면에서도 부처 간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유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유능'과 '성과'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남북·북미정상회담 등 외교·안보성과에 가려져 있던 일자리 등 경제 이슈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국 수석도 "일자리, 소득 증가 등에서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점을 유념해 성과 창출에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제 궤도를 찾아가는 상황에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도 정권을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는 만큼 공직사회의 분발을 주문한 것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두 번째 덕목은 '도덕성'이다.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 형국에서 우리는 다수의 정치세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그런 가운데 국정을 끌어가는 힘은 국민 지지뿐이고 그 지지를 받으려면 높은 도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출범 당시부터 적폐청산을 공약하고 그와 관련한 정책적 움직임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문 대통령으로서는 도덕성에 타격이 생길 경우 정부의 뿌리를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중후반기에 들어서서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로 국민 다수로부터 불신을 받았던 점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은 특히나 선거의 승리로 기강이 느슨해질 수도 있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고삐를 죄고자 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덕목은 '겸손한 태도'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볼 때는 정치나 공직 세계는 언어, 행동방식, 사고방식이 다른 세계라고 느껴질 정도"라면서 "진짜 국민을 모시는 공직자라면 국민을 받드는 태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최고 권력기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앞세우지 말고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태도를 갖추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행정요원이 전화를 받더라도 그건 저를 대신해 받는 것"이라며 "친절하게 대응하면 '친절한 청와대', 그렇지 않으면 '고압적 청와대'가 되니 태도 면에서 각별히 관심을 갖고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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