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운전자 바꿔치기 사실무근"…동승자는 여가부 산하기관 간부
윤씨 "최근 증세 악화…대사관 들이받고 망명 신청하면 갈 수 있다고 생각"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미국 망명을 요구하며 주한미국대사관으로 승용차를 몰고 돌진하는 사고를 낸 여성가족부 공무원은 과대망상증을 앓아왔으며 최근 증세가 심해졌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7일 오후 7시 22분께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정문을 들이받은 사고를 낸 여가부 서기관 윤모(47)씨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고 귀신에 씌었다"며 "미국대사관 정문을 들이받고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다면 미국에 갈 수 있겠다는 망상이 생겼다"고 진술했다.

윤씨는 과거 두 차례 과대망상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지난해 8월 여가부가 미국으로 보내주는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증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일 토플 시험을 보다가 두통으로 포기하고 나온 뒤로 사흘 연속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경찰 관계자가 전했다.

윤씨는 체포 직후 경찰에 "북한과 얽힌 사연이 있어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고 싶어 대사관을 들이받았다"고 말했으나, 경찰 관계자는 "북한과의 사연, 망명 신청 등은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로 보인다"고 전했다.

윤씨가 몰던 승용차는 사고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가부 산하기관 간부 노모(여)씨의 소유다. 노씨는 여가부에 법률자문을 해주는 일 하는데 업무 협의차 윤씨와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노씨가 차를 운전했으나 미국대사관과 KT빌딩 사이 비자 신청소 인근에서 두 사람은 운전대를 바꿔 잡았다. 노씨는 윤씨가 운전을 하겠다고 우겨 특별한 생각 없이 운전대를 넘긴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윤씨는 사고 당일 오전에만 근무하고 오후에 연가를 냈으며, 노씨에게 전화해 "법률자문을 얻고 싶다"며 약속을 잡았다. 두 사람은 오후 6시께 서울역에서 만나 대사관까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경찰은 윤씨를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하고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며, 이날 중으로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족과 직장동료 등을 상대로 윤씨의 최근 건강상태 등을 조사하고 건강보험관리공단 등에서 진료내역을 조회해 진술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로 했다.

또 경찰은 윤씨의 휴대전화를 분석해 사전 모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등 테러 용의점도 수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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