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신문 실태조명…강제북송 되면 인권유린 불가피
불법체류·강제송환 면하려 한국 가면 자식과 '생이별'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중국에서 체류하는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와 강제송환에 이은 낙태, 구타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중국을 거쳐 한국에 넘어온 탈북 여성 박모(41) 씨 사례를 중심으로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실태를 30일(현지시간) 집중 조명했다.

박 씨는 이 매체에 자신의 언니(44)가 중국 당국에 붙잡힌 뒤 죽을지도 모른다며 근심을 털어놨다.

박씨가 중국에 있는 언니와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는 지난 22일이었다. 언니가 중국 선양에서 기차를 탄다는 소식을 듣고선 곧 한국에서 재회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곧바로 악몽으로 바뀌었다.

그의 언니가 출발하기 약 10분 전 불법 이민 단속에 적발돼 다른 탈북자 6명과 함께 체포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의 언니는 현재 소재가 알려지지 않은 교도소에 구금돼 있다.

박 씨는 "나는 언니가 (북한으로) 추방되지 않기를 정말로 희망하고 기도한다"며 "나도 그런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나는 그 일이 언니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씨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려 처음으로 탈북한 후 1999년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경험 탓에 지금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중국으로 탈출한 뒤 여러 차례 인신매매를 당했다는 박 씨는 중국 당국에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박씨가 북한에서 접한 건 계속된 인권 유린이었다.

박 씨는 "북한 보위부 경찰은 내 얘기를 듣는 대신 폭행을 가했다"며 "나는 임신 6개월이었지만 중국인과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허용할 수 없다며 강제낙태를 시켰다"고 증언했다.

박 씨 언니도 중국인 남성과 함께 살면서 15살 된 딸과 9살 된 아들을 뒀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제추방 위험 속에 불안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박 씨는 "언니는 처음엔 중국 떠나기를 주저하면서도 불법 체류 상태로 살아왔다"며 "언니가 성공적으로 한국에 왔다면 나중에 언니 남편, 자녀들과도 재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과 한국, 미국 정부가 언니의 강제송환을 막아달라"고 애원했다.

박 씨 자매 사례처럼 중국에서는 다수의 탈북 여성이 딜레마에 빠진 채 불법 체류를 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중국에서 계속 살자니 북한으로 언제 송환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 하고 한국으로 '위험한 여행'을 시도한다면 현지에서 낳은 자식들과 생이별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내 탈북자 수는 3만1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탈북 여성 중 일부는 중국인 남성과 사이에 낳은 자녀들을 포기하고 나서 한국으로 건너와 비통함을 느끼기도 한다.

중국으로 어렵사리 탈북에 성공했다 해도 북한 여성들은 인권 유린과 성매매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종종 신부가 부족한 중국 시골 지역으로 팔려가기도 한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은 국적도 없어 현지에서 의료나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통일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시민권을 갖지 못한 북한 여성들의 자녀 수는 약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인권단체 '북한 인권을 위한 유럽동맹'의 마이클 글렌디닝은 "박씨 언니는 (북한에) 송환되면 '극심한 처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과의 긴장 완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상황에서 일반 시민에 대한 지속적인 인권 탄압은 잊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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