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까지 국회가 개헌안 발의해야…기대하기 어려우면 정부가 개헌 준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오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음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려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가 책임 있게 나서서 개헌 합의를 이뤄주기를 촉구한다"며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 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대한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겠으나, 국회 합의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나서서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국회 개헌특위에서 국민 주권적 개헌방안이 마련되지 않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그때는 정부가 개헌특위의 논의 사항을 이어받아 자체적으로 특위를 만들어서 개헌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6월 지방선거까지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데다 국회 논의가 여전히 공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100일 기자회견 때보다 정부 개헌안 마련 가능성을 좀 더 강하게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려면 3월 중에는 개헌안이 발의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려면 국회 개헌특위에서 2월말 정도까지는 개헌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개헌특위 논의가 2월 정도에 합의가 돼서 3월 발의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국회 쪽 논의를 더 지켜보며 기다릴 것이나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개헌 준비를 자체적으로 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에서 합의가 안되면 정부가 개헌안을 준비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라며 "당장 개헌발의권을 사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애초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함께하자는 것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등 지난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기도 했다.

다만, 홍 대표는 최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겠다는 공약을 뒤집고 국회가 합의해 연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약속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당이 지난 대선공약을 번복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도 보인다.

또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고 별도로 국민투표를 하려면 적어도 국민의 세금 1천200억원을 더 써야 한다"며 경제적 이유도 내세웠다.

정부 개헌안을 마련할 경우 국회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사안 위주로 1차 개헌을 하고, 추후 2차 개헌을 하는 '단계적 개헌'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해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은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단계적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치분권과 기본권은 합의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합의되는 데까지 1차적으로 (개헌을) 하고, 정부형태 같은 문제는 선거제도 문제도 있으니까 나중으로 미루든가 하는 2차 개헌도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단계적 개헌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부터 개인적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해 왔다"면서도 "개인 소신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개헌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동의하고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최소분모를 찾아내야 하는데 최소분모 속에서 지방분권과 국민 기본권 확대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중앙권력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 하나의 합의를 이룰 수 없다면 이 부분은 개헌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방분권과 기본권 확대와 관련한 사항 중 합의가 가능한 부분은 개헌안을 마련해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되, 많은 이견이 예상되는 중앙권력구조 개편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음 개헌으로 미루는 '단계적 개헌'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개헌 드라이브와 함께 주목할 부분은 문 대통령이 신년사의 첫머리에서 '삶의 질 높이기'를 언급한 점이다.

이는 지난해 국정농단의 여파로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염원에 따라 적폐를 청산하는데 진력했다면, 집권 2년 차인 올해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문 대통령은 지난 연말부터 새해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제 정책에 두겠다고 천명해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정책기획위원회 출범식 축사를 통해 "모든 활동의 초점을 국민의 삶의 질 개선과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맞춰달라"며 "정부 정책이 국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새해 무술년(戊戌年) 신년사에서도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아 국민 여러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경제 정책을 가장 먼저 언급한 데 이어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등 손에 잡히는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정책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삶의 질 개선과 직결된 경제 정책이 신년 기자회견의 첫머리에 배치된 것은 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삶의 질 높이기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내에서도 강조하고, 국무위원들을 만나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라며 "결국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언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상승이 일시적으로 일부 한계기업의 고용을 줄일 가능성은 있지만, 정착되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부담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미 대책을 마련했다"며 "정부가 만들어놓은 대책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이용하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지원대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보험 바깥에 머무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과제이고, 청와대와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그분들이 제도권에 들어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언급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주들이 부담을 최소화하려 각종 꼼수를 쓰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데 대해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한편, 인건비 증가로 부담이 가중된 영세사업장 등의 애로를 해소하는 데에도 정책적 노력을 펴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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