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2년생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직장인 신모(32)씨는 이제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대피소에 고양이 '슈슈'를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슈슈'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빠진 신씨는 가족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지진이 나면 대피소가 아닌 곳에서 '슈슈'와 함께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9월 경북 경주에 이어 1년 2개월 만에 포항에서 또 강진이 발생하자 신씨처럼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정부에 반려동물 재난대책이 부실하다고 지적하며 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재난 발생 정보와 행동 요령을 알려주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며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친구·친척에게 맡기거나 동물병원 등에 따로 대피소가 마련됐는지 알아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권고안에는 반려동물을 다른 곳에 맡길 때 물·사료, 목줄·입마개, 약품, 운반용기, 오물 수거용 비닐봉지 등을 챙겨서 보내야 한다는 설명 외에는 구체적인 대피요령, 행동지침 등은 담겨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견주·묘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블로그 등 온라인에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하자는 글을 올리거나 관련 강연을 여는 등 자발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나 동물학대방지연합(ASPCA)이 소개한 반려동물 재난대피방법을 안내하거나, 한 누리꾼이 번역한 일본 환경성의 '반려동물 재해대책'을 공유하는 식이다.

'반려동물 재해대책'에는 인식표 부착·비축물자 준비 등 일상생활에서 대비, 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응, 대피소와 임시주택에서 주의할 점 등 대응요령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서울 마포구 주민들이 만든 반려동물 협동조합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은 오는 21일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매뉴얼' 강연을 연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진 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소 마련을 간절히 청원합니다', '재난시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주세요',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를 마련해주세요'와 같은 제목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한 시민은 청원 글에서 "포항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주기 싫어서 대피소에 가지 않고 차에 있다. 물론 사람이 먼저지만 동물도 소중한 생명이다. 제발 대피소 한 곳이라도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이 생기길 바란다"고 적었다.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한 누리꾼은 청원 글에 댓글을 달아 "사람부터 좀 삽시다. 사람도 시설이 여의치 않아 좋은 곳에 대피하지 못하는데 일단 사람이 피할 곳부터 제대로 정비하고 나서 개를 챙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겪고 나서 2006년 만든 '반려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PETS·Pets Evacuation and Transportation Standards Act)'을 언급하며 우리도 관련 법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팀장은 1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한국은 지진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한 부분"이라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대피소 도입 등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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