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ICBM 미국의 각성 초래…對중국 압박 속 '빅딜' 가능성도 거론
전문가 "코리아 패싱 막고, 우리의 독자적인 레버리지 만들어야"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2차 발사 이후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 흐름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자신들의 본토가 북한 미사일에 위협받으면서 사실상 레드라인(금지선)을 건너고 있는 북한에 대한 대응 기조를 근본적으로 변화할 조짐까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여기에 북한 문제를 빌미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으면서 한국의 외교 공간은 더욱 좁아지면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추진 이후 미국의 각 정권은 관여, 압박, 무시 등으로 중심축을 바꿔가며 대북정책을 펴 왔지만 지금처럼 외교안보 정책의 우선순위 자리에 북한 문제를 올린 적은 없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중국의 대북 압박 견인에 한껏 고삐를 당길 태세다. 미국이 조만간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미국 매체 폴리티코의 보도도 나왔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원유수출 제한 등과 같은 고강도 대북제재가 무산될 경우 미국은 북한과 거래한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 내에서는 미·중 '빅딜'이라는, 다른 각도의 얘기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외교의 거두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북한 정권 붕괴 이후의 상황에 대해 미중이 사전 합의를 할 것을 미국 행정부 핵심 관료들에게 제안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지난달 29일자 보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북한이라는 완충 지대의 상실을 우려하는 중국에게 주한미군 철수라는 선물을 제시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앞서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지난달 15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북핵 동결을 위해 미국과 중국이 미리 큰 틀의 거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중국에 북한정권 인정, 정권교체 포기, 평화협정 체결, 한국 내 군사구조(주한미군) 일부 변경 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 대외정책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거물이 나란히 미·중 빅딜을 거론하며 주한미군을 협상 칩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비핵화는 사실상 포기한 채 핵·미사일 '동결' 수준에서 중국, 북한과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전략 경쟁과 장래 빅딜 가능성이 병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관철할 것인지는 현 정부의 중대 숙제로 부상했다.

미·중이 4월 정상회담 이후의 짧았던 밀월기를 끝낸 뒤 불꽃 튀는 전략경쟁 구도로 돌아가고, 한·중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대화와 압박의 병행론을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은 아직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북핵 6자회담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협상 트랙이 재가동되더라도 한국이 참가하는 기존 6자회담 틀보다는 북·미 양자 간 담판이 이뤄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또 사드 문제로 인해, 우리 정부가 중국과 대북정책 면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 미래상을 논의하는 자리에 한국이 배제될 경우 한반도는 강대국의 체스판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미간의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과 한국의 독자적인 지렛대 확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한택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는 "ICBM 발사를 계기로 북핵은 그야말로 (한국의 문제인 동시에) '미국의 문제'가 됐다"며 "우리는 미국이 북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는지를 잘 들여다보고, 미국이 자칫 한국을 패싱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10년간 이뤄진 변화(북한 핵과 미사일의 진전)를 인정하고, 우리 나름의 레버리지(지렛대)를 키워야 한다"며 "이란 핵협상때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서방은 이스라엘을 시종 존중했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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