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임윤수 기자 = 사연 많은 이공계 여자들이 한 데 모인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소장 한화진)가 법인 설립 5주년을 기념하여 5월 20일(토) 오후 2시 롯데 액셀러레이터(강남구)에서 <WISET토크콘서트 ‘어쩌다 아름이’>를 개최한다.

화제도 다양하다. 사전에 취합한 사연들을 바탕으로 학점, 연애, 취업, 결혼, 육아, 경력단절, 유리천장, 재취업, 창업 등 이공계 여자들이 부닥치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공계 여성들은 한 번 이상은 아래와 같은 상황에 노출된다. 몇 가지 요소들을 묶어 소수정예 이공계 여성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10대: 어쩌다 여자로 태어난다. ‘바비’와 ‘키티’, 분홍색과 보라색 물건들에 둘러싸여 자란다. 책에도 티브이에도 온통 공주뿐이다. 오빠나 남동생의 장난감을 훔쳐본다. 레고와 로봇이다. 그리고 파란색과 초록색이다. 돌멩이를 줍고 벌레를 잡으며 놀면, 당장 “지지”라는 말을 듣는다.

커서는 남자애들 이겨먹는 드센 계집애 취급을 받는다.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다 막판에 외고로 돌린다. 선생님들은 “여자는 문과, 남자는 이과”, “결국은 남자애들 머리 못 이겨”란 말을 조언이랍시고 한다. 스스로의 뇌를 의심한다. 부모가 딸바보 괴짜라 자신의 일이나 놀이에 딸을 초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다. 보통은 이 단계에서 소녀들의 수학과 과학에 대한 열정은 좌절된다.

-20대 : 편견과 훼방 속에서 살아남은 15-20퍼센트 정도의 여학생들이 꿋꿋하게 이공계에 간다. 실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어보지만 주위엔 온통 남자 교수와 남학생들뿐이다. 학과에 여교수가 한 명도 없는데 교수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모른다.

어려울 때 상담을 청할 멘토 여교수가 가까운 데 존재하지 않는다. 남교수들은 “잘 모르고”, “딸 같아서” 농담과 실언과 성희롱을 한다. 남학생들은 15퍼센트밖에 안 되는 여학생들을 연애 상대로만 취급한다. ‘공대 아름이’로 귀하게 대접받는다는 말은 허상이다. 남학생 단톡방에서 오가는 내용은 차마 옮기기 어렵다. 밤샘과제도 술자리도 위험하다. “누구와 사귀는 애” 아니면 “남자친구가 공부 가르쳐주는 애”로 분류된다.

연애 한 번 잘못하다 헤어지면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평생 조리돌림을 당한다.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들이 숨어버리는 이유도 비슷하다. 이공계 안에서 살려면 문제제기하기가 어렵다. 대학원에 가려니 여학생은 받지 않는 연구실이 있다. 체육이라도 잘하면 어울릴 수 있을까. 축구 농구하는 여자 친구들 모으기도, 운동장 빌리기도 쉽지 않다.

선수보다는 치어리더에 만족한다. 똑같아지려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운동 해봤자 점점 더 이상한 여자애로 분류된다. 수적인 불균형이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30대 :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요행히 결혼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둘러싼 양가의 압력이 높다.

아이는 몇이나, 언제, 어떻게 낳고 키울 거냐는 질문부터 내 몸에 대한 언어적, 비언어적 통제와 폭력이 느껴진다. 임신과정 중에는 건강에 해로운 시약과 전자파와 이공계 실험실의 온갖 것들이 뱃속의 아이를 해칠까 봐 걱정된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이 공간에서 내 자리가 사라질까 봐 근심이다. 계약직 신분으로나마 컴백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인문계 여자들의 생애주기별 취업률 그래프가 M자형이라면, 이공계 여자들의 그래프는 L자를 그린다.

인문계 여자들이 독박육아의 30대를 거쳐 40대 이후 어떻게든 사회로 유턴한다면 이공계 여자들은 그나마도 돌아가기 매우 어렵다.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똑똑한 알파걸인 줄 알았던 언니들이, 정신을 차려 보니 계약직 연구원, 슈퍼맘,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살고 있더란 얘기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자들이 늘어난다.

-40대 이후 : 한 시인은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했다. 가뜩이나 많지 않았던 이공계 여학생들은 아예 학문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바닥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은 극소수다. 독하게 자기관리하며 가정생활하며 실적압박에 시달리며 산다. 여교수라고 쉬운 것도 아니다.

당장은 여성할당제로 들어왔다는 주위의 쑥덕거림부터 참아야 한다. 하다못해 남학생들에게도 영이 안 선다. 학생상담 업무를 비롯해 남교수들이 하지 않는 온갖 일들이 다 내 앞으로 떨어진다. 소수자로서 대우받거나 동료로서 인정받기보다 조직의 윤활제나 꽃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동시에 어떤 연구와 실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것인지도 요구받는다.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년”으로 도매금으로 욕먹는다. 아무리 높아도, 아무리 잘나도, 여성이라는 속성만이 도드라진다. 아무래도 남자인 게 스펙, 여자인 게 죄인 것만 같다.

이것이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과학기술계 여성에게 여전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연공모와 행사 참여접수는 5월 14일(일)까지 WISET 홈페이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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