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임지훈 기자 = 4월 어느 날,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 골목에 자리한 지혜어린이집.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생일 축하 노래가 흐른다. 노랫소리를 따라 어린이집 안을 들여다본다. 알록달록 예쁘게 차려진 생일상 앞에 아이들이 빙 둘러서 있다. 주인공은 정금자 할머니(가명). 이날은 ‘주인공 할머니’가 태어나신 날.

“이 맛에 살지”

아이 손에는 집에서 준비해 온 선물이 곱게 들려있다. 아이들은 미리 연습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곤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한 아이는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고, 또 어떤 아이들은 폭 안겨 뽀뽀를 한다. 할머니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지다 깜짝 놀란다. 할머니 다리를 주무른다고 책상 아래에서 아이들이 불쑥 나타난 것. 귀여운 손주들 덕에 할머니는 웃다 울다 한다.

5월에 태어난 김부덕 할아버지(가명)는 처음엔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는 할머니 걱정에 생일잔치를 거절했다. “내가 해준 게 없는데 받아도 되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지혜어린이집 김복덕 원장은 설명을 보탠다.

“어르신이 있기에 여러 부모님이 태어나고, 그래서 저와 어린이들도 태어났어요. 어르신들이 열심히 사셔서 우리 동네도 이렇게 좋아졌답니다”라고. 결국 원장과 원종2동주민센터 김순금 복지팀장의 노력으로 할아버지는 초대에 응했다.

얼떨결에 생긴 손주들 재롱에 신이 나서 노래도 부르고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 언제든 또 놀러오세요”라는 김 원장의 말에 “왔던 길 그대로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할아버지. 어린이집 오는 길을 외우고 싶었나보다. 잔치가 끝나면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이 맛에 산다”고 한다. 그 어떤 선물보다 손주들 재롱이 가장 큰 선물이다.

“할머니 오시면 꽃가루 뿌려드릴 거예요”

지혜어린이집에서 어르신 생일잔치 준비를 맡은 평화반 박현미 교사는 생일잔치 상만 준비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이 생일의 ‘진짜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랑을 나눠야하는 ‘이웃’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생일잔치의 따뜻했던 기억을 마음속에 담아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눈시울도 붉힌다.

아이들은 이런 선생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할머니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작은 손엔 직접 만든 꽃가루가 한주먹 가득 들어있다. 이제 아이들이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준비한다. 생일잔치를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박 교사를 귀찮게 한다. “할머니 언제 오세요? 오시면 꽃가루 뿌려드릴 거예요”

30번의 특별한 잔치

이렇게 생일잔치를 벌이는 어린이집 6곳은 모두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에 있다. 그림나라(원장 한희진), 명문(원장 김현정), 수성ET(원장 목진경), 예솔(원장 조형숙), 중앙(원장 이현정), 지혜(원장 김복덕) 어린이집. 이렇게 여섯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 어린이가 마음을 모았다. 올해 3월부터 어르신들의 생일잔치를 시작했다. 연말까지 30번의 생일잔치가 열린다. 80살 이상 홀몸어르신들이 우선 그 대상이다. 올해를 시작으로 반응이 좋으면 오정구 전체에 확대할 계획이다.

많은 어린이집이 지역사회연계 활동의 일환으로 어르신들을 만난다. 어린이집과의 만남을 어르신들도 굉장히 좋아한다. “먹을 것도 안 들고 와도 돼. 와서 이야기만 나눠도 참 좋겠어”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 동복지협의체 위원장 예솔어린이집 조형숙 원장.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찾아가는 생일잔치’를 떠올렸다. 이렇게 처음 예솔어린이집에서 어르신 댁을 직접 찾아가는 특별한 잔치를 시작했고, 뜻을 같이 하는 6개 어린이집이 모였던 것.

어린이집에서 준비하는 생일잔치는 어르신의 진짜 생일이다. 하루를 정해 여러 어르신을 챙기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홀로 있기에 생일에 얼마나 더 외로울까 하는 마음에 어르신의 진짜 생일을 챙기기로 했다.

예솔의 뒤를 이은 지혜어린이집 김복덕 원장은 한 번 더 고민했다. 장소 문제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르신 자택으로 가면 집이 좁은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여럿 갈 수도 없고, 도리어 어르신들이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린이집으로 어르신을 초대하게 된 것.

생일이면 아침부터 김 원장은 참 바쁘다. 혹여나 잔치를 잊을까, 어려워할까 싶어 미리부터 연락한다. 복잡한 골목에서 길을 헤매 고생할까 걱정이 앞서 직접 데리러 간다. 하지만 그 얼굴은 참 설레어 보인다. 그 마음이 참 푸근하다.

“어른을 섬길 수 있어 뭉클해요”

10여 년 전 오정동. 홀로 외로울 어르신을 위해 떡을 후원받고, 반려식물을 선물로 준비했다. 자원봉사자와 자활근로자가 홀몸어르신을 찾아가 생일을 축하하던 것이 시작이었다.

‘적은 예산이지만, 이웃 어르신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어느 복지 담당 공무원의 고민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시작은 작았지만 감동은 너무 컸다. 그 이후로 각 동, 단체, 동복지협의체에서는 어르신들의 크고 작은 생일잔치가 열리고 있다.

이제 어린이집에서 어르신과 함께 하게 됐다. 지혜어린이집 김복덕 원장은 어른을 섬긴다는 마음에 우리가 더 감사하고 뭉클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동에서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이웃을 찾고 돌보는 이웃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난다.

어린이집은 나눔의 다리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그동안 방법을 잘 몰랐는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며 어르신들의 선물을 정성껏 챙겨 보낸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알게 됐다. 어르신 생일잔치는 서로에게 선물인 날. 어린이집이 사랑과 나눔의 다리가 되었다. 모두를 사랑으로 이어준다.

허모 복지국장은 “아이부터 이웃사랑을 배우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고사리 손의 꼬마부터 이웃을 사랑하는 부천시민은 진짜로 문화특별시 부천시민이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