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김종덕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 영화, 음악, 공연, 조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총체예술적 협업 프로젝트인 《망상지구》전을 27일부터 7월 17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전시명인 '망상지구'는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놓인 동시대적 상황에 대한 은유로,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협업"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입체적 경험이 가능한 공간을 구축한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대항문화를 대표하는 청년미술 소그룹 <뮤지엄>의 일원으로 작업 활동을 시작한 이래, 복합매체를 활용한 설치예술과 더불어 영화미술, 공연예술 연출로 정평이 나있는 이형주 작가가 이번 전시의 프로젝트 디렉터를 맡았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협업"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기제다. 참여 작가들은 개별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상호간의 결이나 톤을 맞춰 총체적 예술작업을 실현하기 위해 이 같은 작가적 관점에 기반한 조율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미술작업 뿐 아니라 연출가, 프로젝트 디렉터로서 전 방위적 활동을 전개해온 이형주에 주목하고 재조명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다.

그리고 영화음악, 무대공연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이자 뮤지션 장영규, 달파란 등이 사운드 작업으로 전시에 참여했다. 미디어작품 전시뿐 아니라 국내외 영화제에서 다수의 작품을 선보여온 김세진, 박용석 등이 영상작업을 담당했고 독특한 감각으로 주목받아온 사진영상 작가 윤석무와 디제잉 및 사운드아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정태효도 협업의 한 축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계에서 조명 디자인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진영 감독, 공연 음향 디렉팅 전문가 오영훈 감독이 각각 조명과 음향 파트에서 협업작가로 참여했다. 또한 영상작업 외에 퍼포먼스 연출에 탁월한 감각을 보이는 조은지가 《망상지구》 전시의 성격을 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공간은 총 4개의 존(zone)으로 구성되고 각 존은 마치 하나하나의 무대 혹은 장면(scene)처럼 연출된다. 이 4개의 존(zone)은 '망상'이라는 주제에 기반을 두어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개방적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제1존은 실재와 허상, 현존과 부재, 소통과 단절, 개방과 폐쇄 등 수많은 경계와 사이를 미끄러지며 흔들리는 존재인 나 혹은 그 누군가가 속한 체계에 대한 은유를 담는다. 반투명의 구조체는 공간 안에서 미로를 구성하고, 일정 간격을 두고 변화하는 조명은 공간을 다르게 감각하게 해주는 주요 요소이다. 이는 전자진동기계 장치를 통해 여러 종류의 신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운드와 함께 고정되지 않고 분열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형주(인스톨레이션), 장영규(사운드), 장진영(조명), 박용석(영상), 오영훈(음향), 조은지(퍼포먼스)가 주축으로 협업을 진행했다.

제2존은 회피와 외면이 키워놓은 망상과의 대면을 위해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다. 검은 숲, 검은 물, 혹은 마치 길게 늘어뜨려진 검은 머리채와도 같은 공간이 나온다.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없는 비현실적 감각,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은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건드린다. 걸어 들어 가다보면 수많은 띠들 저 안쪽 사이사이에서 웅얼거리듯 들려오는 다중의 사운드들과 바닥을 훑으며 공간 저 바깥의 어딘가에서 비쳐오는 빛들을 만나게 된다. 공간 중간 지점 좌우로 높이 서있는 좁고 긴 영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망상 혹은 환상"으로서의 주관적 시간의 흐름, 보이지 않는 심리적 풍경에 관한 파편적 이미지로 시네마틱 영상, 그리고 관습적 편집공식을 벗어난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이형주(인스톨레이션), 김세진(영상), 오영훈(음향), 달파란(사운드), 장진영(조명)이 함께 작업했다.

제3존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맞닥뜨렸을 법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거대한 규모의 비둘기 형상을 볼 수 있다. 평평한 두 판을 앞뒤로 가지고 있는 이 비둘기 구조체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회전 장치 위에서 쉬지 않고 돌아간다. 구조체의 한 면은 비둘기 이미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투사되는 장소이고, 또 다른 한 면은 산산이 조각난 거울 파편들이 조명에 뿜어져 나오는 빛을 전시 공간에 반사시킨다. 비둘기의 회전, 영상의 투사, 빛의 작동 등으로 이루어지는 이 복합적 연출은 계획적 싱크(sync)로 작동되지 않는다.

제4존은 비좁은 입구를 통과해 들어가면 내부는 어슴푸레 어둠이 깔려있고, 저 멀리 하얀 영상만이 부유하고 있다. 텅 빈 공간에는 여러 소리들을 왜곡시켜 만들어낸 사운드가 울렁거리며 맴돌고 있다. 공간의 가장 안쪽 정면에 비춰진 영상은 액체가 기체로 변화하는 현상을 담은 이미지다. 쉬지 않고 흐르는 백색 풍경은 거의 빛과 같이 보이는 효과로 인해 벽을 열어줌으로써 경계 너머를 상상하게 한다. 다시 마주한 현실의 친숙한 주변을 생소해 보이게 함으로써 관습적 수용을 경계토록 한다. 윤석무(영상), 정태효(사운드), 장진영(조명), 오영훈(음향)이 이형주와 함께 작업했다.

이번 전시기간 동안 전시연계프로그램 및 행사가 다채롭게 진행된다. 4월 27일(수)에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망상지구》의 전시주제와 관련하여 심도 있는 접근을 위해 사회학자(서동진), 정신분석학자(백상현), 그리고 프로젝트 디렉터(이형주)의 강연 및 대담이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진행된다. 이후 전시 공간 내에서 약 2주 간격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5월 11일(수)에는 참여작가 조은지가 연출하는 시적 합창 퍼포먼스 <파라노이드 파라다이스>가 제6전시실 제1존에서 진행된다. 5월 28일(토)에는 달파란과 김세진의 사운드 비주얼 퍼포먼스 <크로스 페이드 Cross Fade>가 제6전시실 제2존에서 있고 6월 18일(토) 제6전시실 제3존에서 색소폰연주자 손성제의 재즈 트리오 앙상블이 공연된다. 7월 6일(수)에 는 정태효와 김혜경의 사운드 댄스퍼포먼스 <트랜스 워킹 Trans-Walking>이 제6전시실 제4존에서 전시연계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6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6월 29일에는 '문화가 있는 날'을 위해 이형주가 <말도로르의 노래>로 잘 알려진 극단 듀공아 대표 김진우와 공동연출한 신작 연극 <파라노이아 극장>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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