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벤데타' 표지

[서울=RNX뉴스] 박지훈 기자 = 끔찍한 핵전쟁이 일어나고 약 10년이 지난 1997년.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영국은 극우 독재 정당 ‘노스파이어’가 지배하고 있다.

강력한 국가체제 앞에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고, 오로지 감시와 통제만 존재할 뿐이다. 이 회색빛 런던에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브이(V)’. 그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

앨런 무어가 쓰고 데이비드 로이드가 그린 『브이 포 벤데타』는 ‘그래픽 노블’의 명작으로 꼽히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다. 2005년에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해 큰 인기를 끌었고, 특유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2019년 영국의 국영방송 BBC가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00권’에 오르기도 했다.

시공그래픽노블은 2018년 미국에서 이 걸작의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출간됐던 특별 에디션의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2009년 국내에 소개됐던 기존 도서의 번역을 다시 다듬었고,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쓴 서문을 추가했다. 그밖에 무어가 쓴 작품 탄생에 얽힌 비화 ‘그려진 미소의 이면’과 로이드가 해설한 스케치북 섹션도 덧붙였다.

한층 더 고급스럽게 재탄생한 『브이 포 벤데타』 30주년 기념 에디션은 그래픽 노블을 사랑하는 팬은 물론, 자유와 신념·국가와 개인·혁명과 해방이라는 유구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일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얼핏 ‘브이’라는 슈퍼 히어로를 내세운 영웅물처럼 보인다.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작품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혁명의 주체는 언제나 시민이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저항하지 않음으로 파시즘을 허락한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스스로 해야 한다. ‘브이’는 외친다. “횡령자, 사기꾼, 거짓말쟁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재앙과 같은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 이어져 왔죠. 이것은 단순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선택했습니까?”

혁명에 완벽한 끝은 없다. 인간은 어리석고, 언제나 했던 실수를 반복한다. 오늘 저항하던 이들이 내일은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권력자에게 그 열쇠를 갖다 바치는 광경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도해왔다.

그렇기에 혁명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나야 한다. 자유와 신념, 저항과 해방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되물어야 한다. 이 작품은 우리 곁에서 30년 가까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혁명가 ‘브이’는 누구인가? 기괴한 미소를 띤 가면 아래는 어떤 얼굴이 숨겨져 있나? 진짜 혁명가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을 넘겨야 한다. 암울하고도 박진감 넘치는 혁명기를 세련되고 명확한 지성으로 빚어낸 그 여정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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